어느새 개헌에 대한 네번째 글! 개헌 시리즈 4탄입니당. 오늘은 '사법개혁'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사법개혁 논의는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사법부가 가지는 낮은 신뢰도에서 출발합니다. 2017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각 형사사법기관을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법원의 경우 42.4%의 응답자가 신뢰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검찰은 더 많은 58.7%의 응답자가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고 하네요. 특히 '법조 비리가 개인의 문제인가, 조직 차원의 문제인가'라는 질문에는 일반국민 응답자의 83.1%가, 전문가 그룹은 93.8%가 '조직차원의 문제'라고 답했습니다.
실제로 얼마 전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에 대해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지면서, 사법부의 재벌 봐주기 행태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돈 있는 사람들은 법망을 빠져나가기 일쑤니,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불만을 피할 수 없겠죠.
그뿐 아니라 얼마 전에는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가 있었다는 보도가 나와, 과연 법원의 독립성이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불신이 더해지기도 했습니다. 특정 사건을 맡은 판사에 대해서 청와대가 법원 행정처에 정보를 요구했다고 하니, 과연 삼권 분립이라는게 제대로 이뤄지고 있느냐는 비아냥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심각한 상황이다보니 사법개혁이 정부의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는데요, 개혁의 방향으로 여러 방안들이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먼저, 대법원장에게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인사권을 축소해야 한다는 방향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듯 합니다. 현재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제왕'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강한 인사권을 쥐고 있습니다. 대법원장은 일반 법관에 대한 인사권은 물론, 대법관 후보 제청에 있어서도 큰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법원장도 헌법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어있다보니, 실질적으로 법원 인사에 청와대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다는 비판이 강합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경우에도, 헌법에 따라 재판관 9인 중 3명을 대법원장이 지명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국회에서 선출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3인도 관례적으로 여당추천, 야당추천, 여야합의로 1명씩 몫을 나눠놓는 점을 참고하였을 때, 대통령이 임명하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대법원장이 사법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이 막강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막강한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축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법 독립이라는 차원에서, 대법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기존의 방식을 변경하여 대법원장을 대법관 중에 호선으로 선출하자는 안도 있구요. 인사추천위원회를 상설화하여 대법관, 헌법재판관, 감사원장 등 헌법기관의 주요 공직에 대하여 위원회가 추천한 후보에 대해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을 취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현재 대법원장이 독점하고 있는 인사권을 분산하여, 각급 법원장은 법관회의에서 선출해야 한다는 의견도 힘을 받고 있습니다.
대법관, 헌법재판관 등 현재 대통령과 대법원장에게 인사권이 주어져 있는 것은 현행 헌법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방향의 개혁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결국 헌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결국 개헌은 사법 독립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사법 개혁의 또다른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국민참여재판제를 실질화해야 하는 방안에 대한 것입니다. 한국은 2008년부터 국민참여재판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 제도의 일종으로, 추첨된 시민 배심원들이 재판에 참여하는 제도인데요, 미국의 배심원 제도와 다른 점이 있다면 유무죄의 결정을 배심원들이 직접 하는 배심원 제도와 달리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배심원들이 판사에게 판결을 '권고'할 권한만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사실 사법의 영역에 민주적 정당성을 더하기 위해서 국민참여재판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은 과거부터 계속 존재했습니다. 또, 국민참여재판은 사법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방향이기도 하며,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이른바 '전관예우' 문제를 해결하는 간단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달리 배심원들의 역할이 '권고'에만 그치고 있는 건 현행 헌법 27조의 내용 때문입니다. 헌법 27조 1항은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인데, 헌법에 따라서 재판은 '법관에 의한' 것이여야 하기 때문에 지금의 국민참여재판제도에서 배심원의 역할은 '권고'에 그치고 있는 것이죠.
본격적인 배심원 제도를 지금 바로 시행하지 않더라도, 훗날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배심제나 참심제를 도입할 가능성을 남겨두기 위해서라도 헌법 27조를 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지금 헌법 그대로라면 배심제나 참심제가 온전히 시행되기 어려운 상황이니까요.
여러모로 개헌은 민주주의의 원칙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군부 독재와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 훼손된 사법부의 독립 원칙, 그리고 법원의 관료적 행태들이 개헌을 통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을지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리 감사합니다 ^^ 예전에 펀치라는 드라마를 재밌게 봤었는데, 그 생각이 나네요. 대법원장 인사권, 국민참여재판 외에도 공수처 신설이나, 좀 더 강하게는 판/검/변 사이 전직 금지 등을 도입해야한다는 의견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정경유착, 권력끼리의 비리/봐주기, 전관예우 등을 제도적으로 막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었어요. 혹시 다른 의견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공수처 신설은 저도 매우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공수처의 경우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헌법에 명시된 헌법기관으로 만드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을거라 생각해서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판/검/변 전직 금지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 헌법의 기본권인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너무 크다고 생각해서 저는 좀 주저되네요... 기본적으로 검찰과 법원의 수직적 위계 질서를 완화하기 위한 노력이 비리/봐주기 문제를 해소하는 방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있습니다 ㅎㅎ
의견 감사합니다. 공수처 신설이나 전직 금지는 현실적으로 도입가능성이 낮은 이야기인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런 제도적 개선은 오히려 풀뿌리민주주의의 실현 같은 (장기적으로 꼭 필요하고, 바탕에 있지만)장기적인 접근 보다는 ‘실형의 제도를 바꾸는 것’이기에 더 쉽고, 접근 가능하고, 효과가 즉각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평화헌법개정에 대해 쓰신 글도 읽었습니다. 비인륜적인 권리를 먼저 포기함으로써 세계적으로 모범을 보이자는 의미도 있고, 이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실익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강대국들이 군비를 지속 확장/유지하는 사이에서, 우리나라가 외교적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을 포기한다는 것은 실현되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판/검/변 전직 금지나, 공수처 신설은 기득권들이 사익보다 공리를 우선한다면 당장에라도 발벗고 나서서 해야 하고 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블리스오블리제로 표현할 수 있겠지요. 저는 ‘검사로 재직하다가 변호사로 전직하여 경제적이득을 얻고, 직업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보장’하는 것 보다는, ‘사법을 관장하는 지위가, 더 큰 경제적 보상과 자유를 포기하더라도 소명감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기에 개인에게 충분히 만족스럽게 추구할 만한 지위’가 되길 꿈꾸고,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그런 위치에 있는 사회가 되길 꿈꿉니다.
아, 저도 공수처 신설은 매우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다만 지금 헌법 개정이 논의되는 가운데 '헌법 기관'으로의 지위를 부여하느냐에 대해서 좀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에요. 먼저 공수처를 신설하고, 공수처의 운영에 대한 모종의 노하우가 생기고 그 효과가 입증되면 차후 헌법 개정으로 헌법 기관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도 가능하겠죠.
사실 집단적 자위권과 관련해서도 당연히 논란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게 없으면 한미동맹은 어떻게 되느냐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구요. 더 고민해봐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헌법에 대한 저의 입장은 시민의 기본권이 더 확대되고 국가에 의해 지켜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직업 선택의 자유는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기본권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군인에게 정치적 중립의 의무가 부과되듯, 기본권도 공공의 필요에 있어서 어느 정도 제한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군인의 경우는 과거 두 차례나 군사 쿠데타를 통해서 헌정을 유린한 역사와 경험이 있기 때문에 87년 헌법에서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강조하는 초 강수를 둔 것이구요, 판/검/변에 대해서는 사실 아직 이렇다할 '개혁' 조치를 제대로 시행해보지도 않은 상황에서 헌법으로 권리를 바로 제약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공무원들과 형평성의 문제도 생길테니까요.
저는 전관예우 금지를 명시한 변호사법의 요건을 더 강화해, 사건수임 금지 기간을 현행 1년인 것을 3년 정도까지로 늘리거나 수임금지 기관을 더 확대하는 것으로 제한을 강화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기회가 되어서 주진형선생님이 하시는 강의 듣고 왔습니다. 여태 글에서, 방송에서 보던 사람을 직접 보고 대화하고 왔는데 기분이 새롭더라구요. 그 분이 생각하는 방식은 아주 근본적인 부분 부터이고, 기존의 지식인들이 그래서 이게 문제다 하고 그쳤던 데에 반해서 이렇게 풀어야 한다는 해법을 개념적인 차원에서라도 또렷하게 전달하셔서 좋은 것 같습니다. 근데 강연 내용은 기존에 책에서 읽었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그리 새롭진 않았고, 프리스티님 답글이 조금 더 반갑습니다 ^^
먼저, 헌법의 의의와 법 체계에 대해 제가 무지했던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기존 제도에 문제가 있었다면 개선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위에서 아래로가 아닌 아래에서 위로의 발전형태가 되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습니다. 그게 더 민주적인 방식인 것 같구요. 사실, 인터넷 검색만 해도 바로 볼 수 있는 헌법인데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반성하는 의미에서 예전 친구가 추천해 준 <헌법의 풍경>이라는 책을 방금 주문했습니다. 시간 날 때 헌법 전문도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문제의 전관예우에 대해서는 그 단어자체를 풀이하면 ‘전 관에게 예를 갖춰서 우대’한다는 것인데 애초에 특권의식이 본질에 우선하는, 있어서는 안되는, 말도 안되는 관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과거로부터 이어져 오던 관습이 되고, 후배 법관 개인으로써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인거죠. 실제 사례가 어떤지는 잘 모르고, 드라마에서나 남들이 말하는 데서 들은 정도의 지식이라 제가 과장된 단면만 본 것일 수도 있지만, 말씀하신 것 보다 더 강한 제한을 두거나, 상위법에서 제한하는 방법을 고려할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다 보니 법에 대해 무료 과외를 받는 느낌이네요. 상세하고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
아 저도 법학 전공자는 아니라 이것저것 조사하면서 글을 쓰는 중입니다 ^^; 개헌과 관련한 책을 쓰는 중이라 초고중 일부를 정리해서 올리는 중인데, 관심 가져주셔서 저야말로 고맙죠.
저도 법에 대해서는 비전문가인 상횡이라, 변호사인 친구에게 검토도 받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친구가 헌법은 법학 만의 영역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하더라구요. 아주 인상적인 말이었습니다. 사실 헌법은 시민 모두의 것인데, 이제까지 너무 알려지지 못한 부분이 있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우리가 너무 법을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두고 있었기에 말씀하신대로 그들의 특권 의식이 생기고, 또 사법부에 대한 통제가 미진했기에 전관예우와 같은 말도 안되는 관습이 생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법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거센 이 시점에서 꼭 폐단을 바로 잡는 제도가 세워지길 꿈꿉니다.
전공이 아닌 분야에 대해 책을 쓰신다니 되게 바쁘시겠어요. 저는 되게 단편적인것들도 공부하면서 쓰려니 엄청 힘들더라구요. 책 나오게 되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