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가 약자되는 사회] 트럼프의 등장.

in #kr6 years ago (edited)

스팀잇 커버.001.jpeg

First Things First

안녕하세요. @rothbardianism 입니다. 오랜만에 좀 무거운 글로 여러분들께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이오스 텔레그램에서 이야기 하다가 그 텔레그램 방장님이 제 글 구독자이신데, 최근에 글을 잘 안올리신다는 피드백을 받고, 부랴부랴 멘탈을 부여잡았습니다. 지금 비트코인은 열심히 뚝빼기 깨지는 중이군요. 요즘엔 비트코인이 가치 저장의 기능 말고도, 뚝빼기 터지는 기능이 추가적으로 소프트 포크 되었나 의심이 될 정도로 뚝배기만 터지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왕 내려가는거 화끈하게 내려가주었음 합니다. 스팀이야 파워업하면 그냥 강제 존버되는거고, 이오스도 락업되면 강제 존버라서 딱히 상관은 없습니다. 언젠간 오를테니 말이죠. 그나저나 블록원 측에서 중요한 발표를 하나 한다고 했는데, 그게 기다려지는군요. 어차피 투자는 기다림의 미학이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보기로 합니다.

강자를 끌어내린다고 약자가 강자가 될 순 없다.

그럴듯한 말입니다만, 제가 지어낸 말은 아닙니다. 미국의 29대 부통령이자, 30대 대통령이 되는 켈빈 쿨리지(Calvin Coolidge)의 말입니다. 켈빈 쿨리지의 말은 오늘날 사회에도 적용해볼 수 있는 문구입니다. 요즈음 우리가 흔히 약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강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조롱하고, 깎아내리며 자신들의 위치를 노리곤 합니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그랬습니다. 사실상 강자(strong)와 약자(weak)의 프레임도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이런식의 프레이밍을 해놓고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평등이라는, 어찌보면 사회의 전반적인 개혁을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결국 자기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과 여, 백인과 흑인,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 이런 것들도 결국 프레이밍 입니다. 사람들을 집단에 분류해서 일반화하고, 몰아가고, 손가락질 하는 문화. 한국에서 시작한 거 같지만, 미국이 늘 먼저 시작해왔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기준에서 강자들을 깎아내리고 끌어내린다고, 자신들이 강자들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갈 순 없습니다. 물론,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을 순 있지만, 장기적으론 역효과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면에서 켈빈 쿨리지 대통령의 말을 다시한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트럼프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트럼프가 당선된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사회적인 요인에는 마녀사냥 당한 강자들의 분노도 어느정도 기여를 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강자라는 것도 자신들이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니라, 그렇게 레이블링 된 것이었죠.

약자가 강자되는 사회, 오바마 시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Yes We Can이란 문구를 달고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날은 아직도 미국사에서 역사적인 날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선언을 하고도 백 년,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꿈이 있다고 선포하고도 수십 년이 지나서 흑인이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되는 날이었죠.

대통령이 되는데엔 인종, 성별, 재산등의 걸림돌이 없어야 하겠지만, 오바마 시대는 역차별이 일어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페미니즘과 흑인 인권운동이 본격적으로 수면위로 올라오기 시작했죠. 여성 인권 신장, 흑인 인권 신장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좋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여성 인권은 신장되어야 하고, 흑인 인권도 보호받아야 하지만, 자신들의 주장과 반대되는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풍토가 생기게 됩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같이 기본 경제학적 원리조차 무시하는 이야기를 반대하면, 혐오론자 차별론자로 몰아가고. 흑인이 사실 백인보다 더 많은 범죄를 일으킨다라는 FBI통계를 들이밀면 인종차별주의자 백인우월주의자로 몰아갔죠. 물론 통계는 변수들(Variables)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서 바뀌겠지만, 자신들이 내놓은 통계에 대한 다른 통계를 내면 몰아가니 문제가 되었죠.

다르게 생각해도 입을 다물게 하는 풍토가 생겼습니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명분하에 말이죠.

그렇게 자기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혹시나 반대하면 사회적 기류를 이용해서 몰아가고 손가락질 하기에 이릅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강자들을 깎아내리고 폄하하여, 자신들이 강해지려는 심보였습니다.

그리고 강해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반대하고 싶어도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고. 사회의 전반적인 기류는 자신들을 따라가는듯 했습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 였습니다

그런 사회적 기류에 반대하고, 마녀사냥 당할 것을 감수하고 발언을 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매장당할 두려움보다, 매장당한 것에 대한 분노가 더 강하게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죠.

페미니즘은 암이라는 슬로건을 달고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동성애자 마일로의 모습입니다.

흑인들이 나서서 흑인 인권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합니다. 흑인의 인권이 남들의 인권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라, 흑인의 인권도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이슈들을 종합해서 대변하는 정치인이 나옵니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였죠.

물론, 평등을 지향하고 인권을 위한다며 운동하던 이들은, 마일로와 같은 사람들이 대학가에서 강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폭력적인 시위를 하는 건 물론이고, 실제로 폭력을 하기도 합니다.

백인의 삶도 중요하다는 주장을 했던 리차드 스펜서가 흑인에게 얻어맞는 모습입니다. 백인을 때려서 흑인의 인권을 신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정말 잘못된 것이죠.

결국 이러한 분노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 트럼프의 대통령직 입니다. 당시에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 만으로도 미친놈으로 손가락질 받던 시기라 조용히 투표만 하고, 아무말도 안한다고 해서 샤이 트럼프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였죠.

과연 저기에선 누가 약자일까요?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이 강자일까요? 아니면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몰아가고, 매장시키고, 나쁜놈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약자일까요?

이렇게 얘기하면 저 또한 한국 사회에서 매장당할 수 있습니다. 인종차별주의자니, 젠더 감수성이 없고, 기득권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흉자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죠. 그러면서 페미니즘 관련된 책 읽어보라며 제목을 던져 줄지도 모릅니다. 페미니스트에게 정치이론을 배운 저에게 말이죠.

하지만 자기와 반대되는 사람을 매장하는 것이 결코 평등주의는 아닐겁니다.

폭력과 강제를 반대하며, 자기와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주장하는 것을 일관적이다라고 말할 수 없겠죠.

나와 다른 타인을 틀린 사람으로 몰아가며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한것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사회적인 인식만 더 부정적이게 되어버렸죠. 미국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겁니다. 한국도 이제 시작하겠죠.

절대로 자신의 기준에서 강한 사람을 깎아내려서 자신이 강해질 수는 없습니다. 타인을 깎아내리기 이전에 타인의 입장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결국, 내가 정의라고 떠드는 그 무엇이 타인에겐 정의가 아닐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가치는 상대적이니까 말이죠.

인권신장, 중요한 이야기 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해서 타인의 권리는 깎아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할 때입니다.

Sort:  

강자에 대해 포스팅해주셨네요. 참 기쁘네요

속이 시원하다. (형, 깍☞깎)요즘 유튜브로 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 관련된 영상들을 좀 보고 있는데, 답답한 부분들이 많았어. 형 글 보고 뻥 뚫렸다. 고마워.

수정했는데 더 있을수도..

*던저줄지도 모릅니다 -> 던져 줄지도 모릅니다.
( 던지다 + 아/어 주다 = 던져 주다)

강자를 끌어내린다고 약자가 강자가 되지 않는다케빈 쿨리지 전 미국 30대 대통령의 말은 큰 공감이 됩니다.
그럼, 약자가 강자와 대적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애초에 강자와 약자의 프레임 부터 잘못 잡았다고 봅니다. 애초에 어떤 집단을 통틀어 약자니, 어떤 집단을 통틀어 강자니 할 수 없죠.. 갑질은 성별, 재산, 국적에 불문하고 이루어지니까요.

말씀처럼 어딜가나 어디에서나 갑질은 있지요. 결국 갑을병정... 계급이 나뉘어진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갑질을 하는 사람이야 그렇다 치지만 을이나 병으로서는 분통이 터지니 그걸 풀어낼 방법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혹은 그걸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갑질이 있어야만 사회가 돌아가는 걸까요? 그들이 원하는 것이 갑을 끌어내려 동등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냥 동등한 대우를 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인격적 권리에 대한 주장을 한 것일지도 모르잖아요.

  • 위의 그들이란 글 전반에서 말씀하신 역차별이나 다른 의견을 묵살하는 '그들'이 아닌 제가 생각하는 갑질을 당하는 다수의 인물을 지칭합니다.

  • 동등한 대우란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이야기가 아닌 인격적 대우를 이야기합니다. 최근 갑질이 다시 이슈화 되는 것은 폭언이나 물컵 같은 비인격적 행동 등에 대한 '갑질'이 이슈화가 되고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갑질의 대상을 일반화해서 집단으로 몰아가는 건 잘못된거죠. 돈이 없는 사람도 갑질은 합니다. 사실 그 인격적 대우라는 걸 바란다는 것도 매우 주관적인거고요(인격적 대우라는게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잖아요).

동등한 대우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로봇이 아니니까요. 모든 사람은 선호가 있습니다. 애초에 이런걸 바로잡는다는 생각 자체가 불가능한 발상이라고 보는겁니다.

이걸 바로잡겠다고 폭력을 쓰는 행위는 더더욱 잘못되었고요. 정부의 개입을 통해서 바로잡겠다는 것도 어불성설 입니다. 갑질이 있어야 돌아가는게 아니라, 돌아가는 사회에 갑질이 있는겁니다.

음. 저 또한 폭력을 동반한 개입은 하니만 못하고 정부의 개입을 통한 것도 방법은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개개인의 선호에 따라 대우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게 지나쳐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 정도의 감정 컨트롤을 할 수 있어야 성인이 아닐까요.
아무쪼록 의견 감사합니다.^^

정의 평등 다 사실 자기 이익을 위해 하는말이죠..
모두를 위한 정의 와 진정한 평등은 힘들 것 같네요

모두를 위한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편 타당한 진리가 있지도 않을 뿐더러, 자신의 주장이 보편 타당한 진리라고 믿는다면 큰 오만이죠.

뫼비우스의 띠같다...
인류 역사상 가장 인간의 권리가 좋은 시기고 앞으로 계속해서 점차 좋아지겠죠??
그래도 구별이 있기 때문에 완전한 평등은 없을듯하고 강자가 약자가 되고 약자가 강자가 되는 현상이 미묘해지지 않을까 싶네여...
횡보장 가즈아!

이렇게 반복되는 한 이 사이클은 계속 될겁니다.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낳고 또 다른 혐오를 만들겠죠.

전혀 무거운 얘기 아니고, 일상글처럼 여기저기서 자주 나왔음 좋겠다 싶은 주제입니다.

이미 이런 주제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사회적 약자로 불렸던 이들이 권력을 쥐게되었다는 반증이죠.

전 일상 기록에서만 조금씩 내비치고 있는데, 곧 좀 특정한 학술적인 각도로 종종 쓸 생각입니다. 미룬 이유는...이런 남이 쓴 글을 읽는건 약간의 사이다가 될 수 있는데 직접 쓰는 건 내 속에서 소화 안되고 있는 고구마를 분석하는 느낌이거든요.

근데 로스님 글 볼때마다 꼭 좀 짚고 넘어가고 싶은 팩트(?) 얘기가 있는데 해도 될까요?ㅋ

네 해주세요!

글 앞머리에 자주 쓰시는 First thing first라는 관용구요! First things first가 정확합니다. 실제 하고자 하는 얘기가 복수든 아니든 간에, 꼭 화자가 하고자 하는 얘기뿐 아니라 어떤 원리의 문제를 그렇게 표현한거니까 그렇게 정해진 정확한 표현이죠.

그리고 잡담이라고 괄호 안에 넣으셔서 자꾸 눈에 띄었는데...물론 선생 등이 아이들 모아놓고 잘 하는 말인데 그게 지난 수업 시간에서 못다하고 남은 이야기이거나, 뭐 신변잡기인 경우가 많아서 "잡담"의 뉘앙스로 오인될 가능성도 있지만, 사실은 거의 문자 그대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이야기"이고 중요한 이야기인 경우를 기본적으로 상정하죠. 즉 사전적 의미 자체가 "먼저 해야 하는 중요한 이야기"이구요.

물론 현실에선 First things first라고 말하고 하는 얘기가 잡담인 경우도 있지만, 그런 얘길 먼저 하는 것이 화자에게 "중요"하기 때문에 원래의 뜻이 성립하는 것이죠. 사실 중학생만 넘어서 외국에 가도 본토인들과 언어 뉘앙스에 대한 이해가 똑같을 수는 없으니, 전혀 개인적인 문제로 보이진 않아요.

제가 챗이나 이런 걸 안하는 사람이라 달리 얘기할 방도가 없어서 댓글로 할 수밖에 없는데...그건 또 좀 그래서 사실 참고 있었네요ㅠㅠ 사실관계적인 이야기인데다가 잘 받아들이실 수 있는 분이라 생각해서 얘기합니다!

아 ,영어를 가르치는데 영어를 틀리다니 ㅋㅋㅋㅋㅋㅋ 쪽팔리네요. 그리고 잡담이라는 것은 first things first의 번역이라기 보단, 그냥 잡담 먼저! 라는 뉘앙스 였습니다! 수정할게요 ㅎㅎ

넵 그렇게 의도하셨을 가능성도 생각은 했어요. 사실 평생 외국에서 살았어도 완벽히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기 때문에, 전혀 이상하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ㅋㅋ

고구마 분석ㅋㅋ 기대하겠습니다.

선거 당시 미국 내 분위기를 잘 몰랐는데 샤이 트럼프가 많이 나올만 한 상황이었군요. 이번 글도 역시 잘 읽힙니다 +_+ 자주 올려주세요!

한 예시로.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students for Trump라는 클럽은, 트럼프라는 단어가 불쾌함을 조성한다고 학교측에서 강제로 해산시켜 버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클럽명에서 트럼프를 지우고 다른 이름을 붙혀 선거운동을 했죠. 이건 너무 유명해서 뉴스로도 날 정도였죠.

항상 감사하게 잘 보고 있습니다 ^^

앗. 저격맞고 오셨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이미 단톡방에서 충분한 얘기를 들었고 나눴기에 ㅎㅎ +_+

맞아요. 뉴비존님과 얘기 즐거웠습니다..^^

매우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_+

나중에 또 대화하시죠 ㅎㅎ

구래욤+_+ ㅎㅎ 양질의 대화였네염 ㅎㅎ

"강자를 끌어내린다고 약자가 강자가 될 순 없다." 멋진 문구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문구이기도 합니다 ㅎㅎ

평등의 구현이 아닌 불평등의 완화가 중요한 것이죠.

그 불평등의 완화도, 상대방을 끌어내려서 밑바닥에서 만나는게 아닌, 서로가 조율을 하는게 중요한 것이죠.

역지사지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대가 오는 모양이로군요.

뭐 그렇기도 한데, 서로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겠죠. 장 폴 샤르트르가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이야기 한 이유도 결국 우리는 타인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데, 기득권이니 뭐니 일반화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죠. 우리도 그들을 이해 못하지만, 그들도 우리를 이해 못하니까요.

하향평준화가 아닌 상향평준화로!!

Ps. 오늘은 하늘에서 빨간색이 떨어진다, 이오스를 줍다. 개이득!

제로섬 게임이 아니길 바래요.

몸을 만들 때, 근육을 키우는 것이 힘드니까 체지방을 극도로 낮추어 어거지로 근육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건강 상 좋지 못하며, 저 또한 그런 경험이 있죠...
마찬가지로 타인을 깎아냄으로써 자신을 높이려기 보다는 스스로가 강해질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걸 운동으로...ㅋㅋ 네 맞습니다. 트럼프 마일로 이런 사람들의 행동이 그렇다고 옳지 않지만 이런 사람들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죠..

오늘도 잘 보고갑니다~^^

글쎄요,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위해 미국 정치판을 예로 들 때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예만 드신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위의 사진에서 스펜서라는 사람이 얻어맞는 모습이 있지만, 그 반대 예들, 즉 트럼프 지지자들에 의해 행해진 폭력행위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제가 보기엔 미국 정치판은 지금 엉망진창 난장판이고, 지지자들의 극한 대립이 나날이 깊어가는데 이 중에서 한쪽이 폭행당하는 사진만 가져다가 폭력은 한쪽에 의해서만 행해졌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셔요. 강자에 대한 변명처럼도 느껴지구요.
본문에 "샤이 트럼프"라는 언급도 나오는데, 샤이 트럼프의 원인이 "미친놈"이라는, 다른 사람들의 비난때문이었을까요? 전 오히려 "샤이 트럼프" 본인들도 도덕과 욕망 사이에서 고민했고, 욕망의 손을 들어주었기에 "샤이"했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일리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스펜서와 마일로의 발언들이 자극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저들이 폭력을 일삼지는 않았다는 것이죠(추후에 지지자들은 폭력적이게 되었지만요).저는 저들을 옹호하려고 이 글을 쓴게 아니라 저들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에 대해서 쓴 것입니다. 즉 인과관계에 대해서 설명하려는 것이지 저들에 대한 옹호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트럼프를 지지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풍토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홍준표를 지지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했던 거 처럼요. 이 사실을 이야기 한다고 제가 홍준표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이러한 사회적 풍토를 이야기하려는 것이죠. 분명히 트럼프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확고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도덕과 욕망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람들은 트럼프를 지지하는게 도덕의 범위라고 봤습니다. 욕망의 문제가 아니라요. 트럼프를 지지해야 자신들이 억압당하는게 해방된다고 봤으니까요. 그런데 그 사회적 기류가 그러지 못했을 뿐이었죠.

그리고 한쪽 스피커를 저렇게 강제로 막은 사례는 트럼프 반대쪽 밖에 없습니다. 반-트럼프 스피커를 트럼프 지지자가 폭력적으로 막은 사례가 없으니 말씀 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이 글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글이 아니라, 어떻게 저런 사람들이 나오게 되었는지 배경을 설명하는 거였습니다.

추가하자면 이후에 트럼프 지지자들도 굉장히 과격한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이러한 원인들에 대한 reactionary movement로 말이죠. 즉, 이건 뫼비우스의 띠 처럼 계속 반복된다는 것이고, 저는 이 글에서 트럼프와 마일로 그리고 스펜서, 그리고 대안우파라는 괴물들이 생겨난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한 것이니 치우쳐 보일 수 있지만, 이 글을 치우쳤다고 보시는 관점부터가 치우쳤다고 보여집니다. 저는 이 글에서 트럼프, 스펜서, 마일로를 훌륭하다고 말한 적도, 지지한 적도 없습니다.

타인을 끌어내려 자신의 평등함을 추구하면 저런 부작용들이 생기니까, 깊은 성찰을 해보고, 많은 생각을 하면서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죠. 이걸 가지고 치우쳤다고 하시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저도 당시 UC 버클리에서 있었던, 연사의 진입을 방해하기 위한 물리적 충돌을 기억합니다. (당시 연사가 스펜서였는지 아님 다른 사람이었는지 사실 확인은 안했습니다) 당시에도 "인종차별주의자의 발언을 허가하는 것도 자유인가"라는 논의가 활발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한쪽 스피커를 저렇게 강제로 막은 사례는 트럼프 반대쪽 밖에 없습니다. 반-트럼프 스피커를 트럼프 지지자가 폭력적으로 막은 사례가 없으니 말씀 드리는 겁니다.

이 말씀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쪽 스피커를 저렇게 강제로 막은 사례는 인종차별주의 반대쪽 밖에 없습니다. 반-인종차별주의 스피커를 인종차별주의 지지자가 폭력적으로 막은 사례가 없으니 말씀 드리는 겁니다.

이렇게 적으면 이건 또 이것 나름대로 말이 되지 않습니까?

모든 트럼프 지지자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트럼프 덕분에 인종차별주의자들이 활개치고 다닌 것은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덧붙여, 솔직히 저는 스펜서라는 사람의 정확한 사상이나 워딩을 모릅니다. 알고 싶지도 않으니까요. 그래서 "스펜서"라는 개인이 아니라 "트럼프를 열렬히 지지하는 인종차별주의 이론가"라는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말하자면, 이 사람이 설령 직접 폭력을 조장하진 않았다 하더라도, 이런 이론을 설법하는 것 자체가 언어의 폭력이라 생각합니다.

"강자를 깎아내려 강해질 순 없다, 그런식으로 폭력이 정당화되진 않는다"라는 명제에는 동의합니다. 당연히 깊은 성찰이 필요하죠. 다만, 그 예로서 트럼프는 너무 위험하다는 사견입니다. 트럼프는 단순히 '선한 강자' 혹은 '수동적인 강자'가 아니라 인종차별주의를 위태롭게 넘나드는 '위험한 강자'니까요. 그리고 미국 사회에서 "인종 차별"이라는 이슈가 가지는 중요성을 조금 가볍게 보고 계신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듭니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일궈낸 "인종 평등"이라는 가치가 순식간에 몇 십년은 후퇴해버렸다는 평가도 나오니까요. 홍준표씨로 예를 들자면 이렇게 쓸 수도 있겠군요. 트럼프는 홍준표+독재찬양 정도 될 것 같습니다. 피땀으로 일군 민주주의를 순식간에 몇 십년은 후퇴시킬 수 있는.

UC버클리에서 있었던 프로테스트는 마일로를 막기 위해서 벌어진 일이었고요.

한쪽 스피커를 저렇게 강제로 막은 사례는 인종차별주의 반대쪽 밖에 없습니다. 반-인종차별주의 스피커를 인종차별주의 지지자가 폭력적으로 막은 사례가 없으니 말씀 드리는 겁니다.

아니요. 이것도 말이 안됩니다. 마일로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었고요, 스펜서가 인종차별주의자라 하더라도 물리적으로 그들을 막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나와 반대된다고 그들의 입을 틀어막는건, 오히려 인종차별보다도 무서운 행위죠.

언어의 폭력을 절대로 물리적인 폭력으로 무마해선 안됩니다. 트럼프가 인종차별주의를 조장한 것도 없고요. 트럼프는 단지 기존에 왜곡되어있던 사실들에 대한 반감들을 이용한 것 뿐입니다. 트럼프는 별로 위험하지 않았습니다. Police Brutality가 흑인에게만 집중되어있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 백인들이 흑인을 제일 많이 죽인다는 이상한 선동들에 대한 분노가 결집되었다는 겁니다.

글쎄요. 트럼프가 당선되고서 오히려 왜곡되었던 사실들이 바로잡히는 거 같습니다. 오히려 dj스팀님이야 말로 트럼프에 대해서 너무 왜곡된 시선을 가지고 계신게 아닌가 싶네요. 도대체 트럼프가 당선돼서 흑인들의 인권이 어디까지 후퇴했는지 지표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여전히 수많은 대학교에선 Affirmative action같은 소수 우대정책들이 계속되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만. 오히려 dj스팀님 같이 트럼프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가진 분들이, 트럼프가 당선된 것 만으로 인권이 탄압되었다는 상상을 하고 계신게 아닌지 여쭙고 싶습니다.

스펜서라는 사람의 사상을 알고싶지도 않으니까 그런 오해가 생기는거겠죠. 대안우파는 백인의 우월성을 강조한다기 보다, 서구문명의 우월성을 강조했던 것이고. 백인이 당하는 역차별을 타파하려고 했던겁니다.

UC버클리 같은 사태의 경우, 장소의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집주인이라 생각하는 학생들이 '우리 집에선 안돼'라고 막았던 그 일(폭력)에 대하여, 물론 서로 다툴 여지 충분한 사건이었다 생각합니다. 그건 그런데...

충분히 아실 것 같은 분이 갑자기 트럼프 정권 1년 반 만에 흑인 인권 후퇴를 언급하시니 좀 당황스럽군요. 트럼프 정권 1차 타겟은 흑인이 아니라 불법 이민자로 대표되는 히스패닉입니다만?
내부에 소수의 적을 만들어 다수의 지지를 얻어내는 방식,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히스패닉이 어느정도 정리되었을 때, 다음 타겟이 아시안 이민자가 될 것 같아 불안한 1인입니다.
Affirmative action은 그래서 지금 대법원까지 올라간 걸로 알고 있구요.
1년 반 만에 눈에 띄는 지표가 드러날 만큼 미국 사회가 약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 총기 사고 관련 지표는 눈에 띄게 바뀌었겠네요. 물론 여기서는 큰 관련은 없겠습니다만. 그런데 제가 느끼는 더 무서운 점은, 예전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던 사상, 언행, 행동들 (예: kkk단의 눈에 띄는 모임)이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 또 저래네' 정도로 완화된 것 자체입니다. 미국 사회를 위태롭게 묶어놓던 가느다란 끈이 언제 끊어질지 몰라 불안해졌다 정도로 표현하면 이해가 되실까요?
사족입니다만, 이런 시류의 변화를 트럼프 본인이 만든 건 아닙니다. 그렇게 위험한(?) 인물은 아닐거에요 ^^ 트럼프는 그저 이런 시류의 변화를 잘 잡아내고 이용해 올라 탔을 뿐일 거에요. 다만 유럽도 마찬가지지만 극우파의 득세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 변화가 두려울 뿐입니다.

UC버클리 같은 사태의 경우, 장소의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집주인이라 생각하는 학생들이 '우리 집에선 안돼'라고 막았던 그 일(폭력)에 대하여

그 UC버클리의 학생들이 초대한 것입니다. 반대하는 학생들이 찬성하는 학생들의 권리까지 무시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불법 이민자에 대한 추방이랑 인권 후퇴랑 같은 맥락이 아닙니다. 불법 이민자에 대한 추방은, 경제적 이슈가 엄청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Free Rider의 문제가 심각하죠. 그들에게 세금을 물리거나, 그들이 불법으로 들어왔으면 적발하는게 어떻게 인권침해입니까?

아시안 이민자도 미국이 정한 룰에 맞춰 들어오라는 건데 이게 왜 인권 침해고 인종 차별인지 모르겠군요. 미국은 뭐 개나소나 다 들어와서 다 부유한 삶을 영위하고 해야합니까? 미국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재산들을 불법 이민자가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일입니다. 이건 미국 시민들에 대한 재산권이 연관된 문제입니다. 단순히 인종차별의 문제로만 몰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에요.

극우에 대한 인지는 계속 해야겠죠. 그런데 극우들이 왜 나왔는지에 대한 이해를 해야한다는 겁니다. 극좌와 극우는 하나입니다. 극좌가 극우를 부르고, 극우가 극좌를 부릅니다. 트럼프가 득세하게 된 건, 백인들, 그리고 기존 미국 국민들에 대한 마녀사냥, 일반화, 손가락질이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전 Affirmative Action자체도 역차별이라고 보고있습니다. 대학교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건 대학교들의 자유지만, 정부가 강요하는 건 잘못되었다고 보고있고요.

저도 당시 UC 버클리에서 있었던, 연사의 진입을 방해하기 위한 물리적 충돌을 기억합니다. (당시 연사가 스펜서였는지 아님 다른 사람이었는지 사실 확인은 안했습니다) 당시에도 "인종차별주의자의 발언을 허가하는 것도 자유인가"라는 논의가 활발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한쪽 스피커를 저렇게 강제로 막은 사례는 트럼프 반대쪽 밖에 없습니다. 반-트럼프 스피커를 트럼프 지지자가 폭력적으로 막은 사례가 없으니 말씀 드리는 겁니다.

이 말씀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쪽 스피커를 저렇게 강제로 막은 사례는 인종차별주의 반대쪽 밖에 없습니다. 반-인종차별주의 스피커를 인종차별주의 지지자가 폭력적으로 막은 사례가 없으니 말씀 드리는 겁니다.

이렇게 적으면 이건 또 이것 나름대로 말이 되지 않습니까?

모든 트럼프 지지자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트럼프 덕분에 인종차별주의자들이 활개치고 다닌 것은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덧붙여, 솔직히 저는 스펜서라는 사람의 정확한 사상이나 워딩을 모릅니다. 알고 싶지도 않으니까요. 그래서 "스펜서"라는 개인이 아니라 "트럼프를 열렬히 지지하는 인종차별주의 이론가"라는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말하자면, 이 사람이 설령 직접 폭력을 조장하진 않았다 하더라도, 이런 이론을 설법하는 것 자체가 언어의 폭력이라 생각합니다.

"강자를 깎아내려 강해질 순 없다, 그런식으로 폭력이 정당화되진 않는다"라는 명제에는 동의합니다. 당연히 깊은 성찰이 필요하죠. 다만, 그 예로서 트럼프는 너무 위험하다는 사견입니다. 트럼프는 단순히 '선한 강자' 혹은 '수동적인 강자'가 아니라 인종차별주의를 위태롭게 넘나드는 '위험한 강자'니까요. 그리고 미국 사회에서 "인종 차별"이라는 이슈가 가지는 중요성을 조금 가볍게 보고 계신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듭니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일궈낸 "인종 평등"이라는 가치가 순식간에 몇 십년은 후퇴해버렸다는 평가도 나오니까요. 홍준표씨로 예를 들자면 이렇게 쓸 수도 있겠군요. 트럼프는 홍준표+독재찬양 정도 될 것 같습니다. 피땀으로 일군 민주주의를 순식간에 몇 십년은 후퇴시킬 수 있는. 현 한국 사회에서 독재 찬양을 대놓고 지지하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게 이상하지는 않을꺼라 생각합니다.

사실 그

땀으로 일군 민주주의를 순식간에 몇 십년은 후퇴시킬 수 있는.

이라는 것이 말도 안되는게요. 민주주의 수십년 후퇴시킬려면, 사법부 입법부 다 장악해야합니다. 과거 박정희 때나 전두환 때 처럼 군부로 다 장악을 하던가요.

하나의 대통령 선거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진 않습니다. 트럼프가 당선되자 캐나다로 떠날거라던 사람들이 떠오르네요. 그런데 지금 잘들 살고있더군요. 세상이란게 그래요. 트럼프 되면 백인들이 때려죽여도 보호 못받을거 같고 그렇죠? 그런데 사회랑 정치 시스템이란게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그렇게 극단적으로 바뀔 순 없습니다. 그런 염려를 하는 분들 치고 미국 정치 시스템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 심도있게 이해하신 분들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혹시 미국에서 개헌을 하려면 상-하원에 어느정도 의석을 보유해야 하는지 아시나요? 그리고 미국 헌법을 검토하는 대법관들을 대통령이 언제, 어느 경우에 확대시킬 수 있는지 아시나요? 또는 의회나 사법부는 행정부의 행위들을 어떠한 경우에, 어떤 절차를 밟아서 제지하거나 견제할 수 있는지 아시나요?

이런 부분들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니까, 단 한명의 당선이 모든 체계를 뒤흔들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평등과 인권을 이야기 해야 한다면 강자와 약자의 논리보다는 사회학이 출발하는 지점인 현상과 원인에 대한 고찰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맥락에서 하시는 말씀인지는 이해합니다. 인권을 외치는 이들에게서 반인권적인 행위가 나오는 일도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어느 노예가 죽창을 들고 반란을 일으킨다 해서 이를 폭력이다, 결국 네가 기득권이 되려는 게 아니냐 매도 할 수 없듯이 현대 사회 계급도 이런 측면에 복잡하게 걸쳐 있습니다. 법이라는 사회적 테두리가 정의를 담보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구요.

전 어떤 경우에서도 폭력은 금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역사 속의 혁명이나 변화를 위한 저항이 보여주듯, 때로는 그것이 폭력으로 표출되는 -결국 힘과 힘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습니다. 그것이 필수적인 건 아니지만, 앞선 예시처럼 계급의 울분은 평화적이고 아름다운 방법으로 승화되기가 꽤나 힘드니까요. 그런점에서 '약자'는 평화라는 말 앞에서 더 약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모순적으로 반인권적인-반평화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구요. 이 부분이 딜레마이자 한계일 것 같네요.

로쓰님 글 잘보고 있습니다만 오늘은 생각이 많이 다른 거 같아 글 남겨 봅니다. 혹 이런 댓글이 불편하시면 앞으로는 남기지 않을게요. 열린 토론이라면 저도 환영이구요!

노예가 노예가 아니니까 문제라고 봅니다. 애초에 강자와 약자의 논리는, 제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저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죠.

기존 역사속 혁명은 정부에 대한 혁명이었습니다(기존 인종차별도 정부가 인종차별을 법제화 시킨것에 대한 투쟁이었죠. 마틴 루터 킹, 말콤 엑스가 하고자 한건 백인들에 대한 일반화와 손가락질이 아닌, 정부가 헌법위에 세긴, 짐 크로우 법과 같은 차별법들에 대한 철폐를 이야기 한 것입니다). 특정 개인에 대한 일반화로 인한 집단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요. 지금의 경우는 오히려 정부의 권력을 이용해서 자기들의 편의를 보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개인대 정부의 갈등이 아니라, 집단대 집단의 싸움에서 일반화와 손가락질, 그리고 매도는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니 비판을 하는겁니다.

무엇에 반대하면, 그 사람을 정상인이 아닌 사람을 취급해버리고. 바로 차별주의자로 몰아가는 행동들이 결코 약자의 행동은 아닐겁니다. 여태까지 인권은 일반화나 마녀사냥을 통해서 신장되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아실겁니다. 이런식으로 상대편을 매도하고 손가락질 해서 얻을 수 있는 건, 결국 이에 대한 혐오감 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던 겁니다. 뫼비우스의 띠가 되는거죠. 그걸 지양하자고 하는 것을 인권운동 자체를 비판한다고 받아들이시면 안될 거 같습니다.

약자가 약자가 아니니 비판을 하는것이고요. 강자가 강자가 아니니 비판하는겁니다.

하신 말씀 중,

특정 개인에 대한 일반화로 인한 집단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요.

이 부분에는 저도 공감합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내가 가진 생득적 힘을 때로는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하게 됩니다. 백인/남성/부유한 집안 에서 태어난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생득적인 힘을 가지니까요. 물론, 그는 흑인/여성/가난한 이가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일반화 해서 비난할 때 당혹스럽기도 하겠죠.

제가 노예의 예를 들었던 건 그들이 노예라는 뜻에서가 아니라 계급적 차이와 그 투쟁에 대한 선명한 주장을 위해서였습니다. 더불어, 강자와 약자는 논리라기보다는 하나의 사회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더 가진자와 덜 가진자, 남성과 여성, 백인과 흑인이 갖는 힘의 크기는 스팀잇에서 '스파'가 보여주듯 하나의 계급, 곧 힘과 같다고 봅니다. 물론 이 마저도 프레임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만.

혁명이란 건 이런 힘의 분배가 급격하게 변하는 역사적 분기점이라 생각합니다. 단지 군주의 신민에 불과했던 이들이 제 손으로 지도자를 뽑게 되는데 까지는 수 많은 유혈사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자는 '추구' 하기보다는 '저항'하기 마련입니다. 왜냐면 그들이 갖는 계급적 위치가 곧 그렇지 않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정해진다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정해진 수량을 어떻게 배분할 것이냐 하는 '정치'의 출발점에 이러한 움직임도 서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국민을 위한 하나의 유동적이며, 유기적인 구성체이지 절대적인 목적을 위해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유권자들은 투표를 하고 나름의 결과를 산정하는 방식을 따라 정부를 꾸린다는 점에서- 누구라도 정부를 위시해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건 당연한 움직임은 아닐까 싶습니다.

백인/남성/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누군가가 있다면 더 많은 특권을 누릴수야 있겠죠. 그렇다고 이들의 재산을 빼앗거나 때리거나, 백인이라고 부유하다고 손가락질하고 왕따시켜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면 여기서 그 힘은 어디에 있는걸까요? 손가락질하고 왕따시키는 사람들에게 힘이있다고 보여지는데요? 물론, 백인이고 부유한 사람이 그런것들을 가지고 남용하고 오용하는 경우엔 지탄받아야 마땅하겠습니다만.

결국 정부는 그런점에서 모순을 가집니다. 특정 다수의 이득을 위해서 특정 소수의 권리를 희생해야만 하기 때문이죠. 결국 정부는 "국민을 위한"하나의 유동적이며 유기적인 구성체가 아니라. "다수"를 위한 하나의 유동적이며 유기적인 구성체일 뿐입니다. 유권자들만 잘 몰아가면 강제를 통해서 이익추구가 가능해진다는 이야기죠.

그리고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지금 제가 말하는건 기존의 혁명과는 다른 맥락입니다. 기존의 혁명은 정부로부터 자유를 추구했지만, 지금 이들이 하는 혁명은 또 다른 집단의 비난과 일반화를 통해 자기들을 옹호하는 기조를 만드는 정치적인 선동행위에 불과합니다. 정부로부터 자유가 아니라, 정부의 힘을 악이용해서 역차별을 만드는 행위라는겁니다. 그 결과가 마일로, 스펜서, 트럼프라는 결과를 낳은거구요.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기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내가 흑인/여성/가난한 사람일 때입니다. 내가 자초하지 않은 생득적인 지위에 따라 자신의 계급이 결정되는 건 부당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백인/남성이 현대 미국의 권력의 중심층에 섰는지 역사적으로 따져본다면 그런 부당함에 대한 비판은 더욱 정당성을 얻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걸 뺐겠다고 표현하면 정말 이상하지만, 그걸 보다 형평성 있게 분배해달라 요구하는 것이라 볼수도 있습니다. 정해진 총량을 어떻게든 나눠 가져야 하니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문제는 노력의 문제라 볼 수 있곘지만 성이나 인종이니 하는 건 전혀 그렇지 않은 부분이죠.

애매한 지점이죠. 서로의 권리가 충돌하는 지점이구요. 그 부분을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현대 정부는 '지지자'를 위한 구성체이다보니- 이익집단에 가깝죠. 그러다 보니 '반정부' 시위라는 말도 나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이런 기능은 시민단체나 인권단체로 넘어간 지 오래죠.

그렇다면 결국 평화로운 시위를 통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거나 투표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정부를 꾸려가는 것이 최선이라 보시겠군요.

(댓글이 바뀌어 하나만 더 적겠습니다..맥락이 조금 달라졌네요. 힘이란 지적하는 목소리와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발언의 위치에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겁니다. 지금 사회가 백인 남성을 위주로 이루어졌다는 생각들 때문에 역차별이 일어나는 겁니다. 당신은 백인이니까 괜찮아. 라는 선입견이 역차별을 만들어 낸 것이죠.

서로에 대한 이해가 없습니다. 전 미국에 있으면서 억압당하는 백인, 가난한 흑인, 이들 모두를 보며 제 3자인 황인으로써 살아갔습니다. 모든 백인은 기득권일 것이라는 생각. 이건 모든 흑인은 저질이라는 생각과 다를바 없다는 겁니다.

흑인은 백인이 겪는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고 백인은 흑인이 겪는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니 이런 일반화와 폭력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일반화를 일반화로 받아들이면 다시 또 일반화로 맞받아칠겁니다.

이러면 흑인의 인권 여성의 인권은 커녕, 더 많은 불평등과 갈등, 선입견이 생기겠죠.

그 어떤 백인도, 자신을 기득권이라고 손가락질하며, 사죄하라는 흑인을 이해하려하지 않을겁니다.

이는 흑인도 마찬가지구요.

제가 가장 이상적으로 보는 사회는 사람을 인종 성별 무엇으로 나누지 않고, 그냥 다 개인으로 보자는 겁니다. 나는 나 너는 너. 말이죠.

이걸 다르게 말한다면 노동자만 힘드냐 CEO도 CEO대로 힘들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 같습니다. 물론, 아주 다양한 결의 노동자와 CEO가 있고 그걸 하나로 묶을 수 없다는 점에는 공감합니다.

범주화는 위험하죠. 사실이 아니기도 하구요. 결국 개인은 자신이 갖는 입장과 계급을 대변할 수 밖에 없는 거 같네요.

문득 <난쏘공>이 생각나네요. 거기서 나오는 난쟁이와 곱사등이?(였던가요.) 그들의 이야기를 다루다 조세희 작가가 '나도 힘들고, 고민이다.'하는 자본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목이 나오잖아요.

댓글이 조금 바뀌었네요.. 저와 로쓰님은 정말 다른 시각으로 법과 계급을 바라보는 거 같습니다. 흥미롭기도 하고 조금 조심스럽기도 하고 그러네요. 저도 항상 이런 움직임을 볼때마다 '혐오'로 치닫는 게 불편하기도 합니다만, 한편으로는 왜 많은 움직임들이 결국 '혐오'로 치닫는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거 같습니다. 인간은 다른 듯 하면서도 무척이나 비슷하니까요.

결국 모두가 인권의 존중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할 것인가 하는 이익의 문제로 귀결되어 결정되는 게 아닐까 싶네요.

아마 국내에 저랑 비슷한 관점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을겁니다. 그래서 많이 어그로가 끌리기도 합니다. 욕도 많이 먹고요. 뭐 그건 제가 생각을 좀 다르게 하니까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고 보고있습니다.

저는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개인의 편이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이라는 이유로, 백인이라는 이유로, 흑인이라는 이유로 몰아가고 일반화하는 일들이 싫은 것 뿐입니다.

이런 이야기은 선유기지에서 커피한잔 하면서 하면 좋을듯 합니다 ㅎㅎ

ㅎㅎ예기치 않은 댓글 폭격이어서 좀 그러셨을 거 같습니다. 선유기지든 다른 곳에서든 한 번 뵐 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아직 kr-youth에 속하거든요 ㅎㅎ

익숙합니닼ㅋㅋ 이런 댓글 폭격을 페북 때 부터 받아봐서요 :) 조만간 깊은 얘기 나눠요!

@rothbardianism님 주제와 상관없는 댓글 죄송하지만 6/6까지 선유기지배 스타리그 조별예선을 진행해야하는데 유일하게 한경기도 안하셨네요ㅠㅠ 카톡방대화 확인해주세요

구구절절히 공감가는 글 입니다.
특히나 한국 사회는 더 심한 것 같아요. 전반적으로 한쪽으로 쏠림현상이 매우 심한 것 같습니다. 잘 읽고 크게 느끼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