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이야기 (1) : 흰 말은 말이 아니다 (白馬非馬)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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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말은 말이 아니다 (白馬非馬)


글이 발생하며 우리는 언어에서 경험을 배제하고, 글 자체를 정보를 담은 기호로서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꽃’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이 단어가 들판에 실재하는 ‘꽃’들을 직접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에 관하여 기원전 3세기 중국전국시대의 조나라 문인, 공손룡公孫龍이 제기한 흰 말은 말이 아니다라는 논변은 꽤 유명합니다. 그가 적은 죽편에는 다음과 같은 형식 논리가 적혀 있습니다.

백마는 말이 아닐 수 있는가?

그렇다.

어떻게?

‘말’은 모양을 가리키고, ‘희다’라는 것은 색깔을 가리킨다. 색깔을 가리키는 것은 모양을 가리키는 것과 다르다. 따라서 백마는 말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흰 말은 말이 아닌 것입니다.


이, 뭔 개소리야


자, 진정하시고 공손룡이 한 말의 의미를 설명해보자면 이렇습니다.

먼저 일반 언어를 기호화하여, ‘말’의 의미 범주를 A라하고, ‘희다’의 의미 범주를 B라고 쓰면, '흰 말'은 A∩B 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학적 논리에서, A∩B ⊂ A 이지만, A ⊄ A∩B 이므로, A∩B ≠ A 의 식이 성립함을 알 수 있는데, 이를 다시 일반 언어로 이를 풀어내면, 흰 말(A∩B)은 말(A)이 아니다(≠)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엇, 듣고 보니 그럴듯하잖아” 싶은 이 궤변은 사실 언어가 가진 이중적 의미를 절묘하게 파고들었을 뿐입니다.

실상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A는 B이다”라는 언어는 상황에 따라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로 A=B라는 의미를 갖고, 둘째로 A⊂B 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래서 전자의 의미로 “내 스팀잇 아이디는 @wakeprince이다”라는 명제의 역인 “@wakeprine는 내 스팀잇 아이디이다”가 성립하는 한편, 후자의 의미로 “나는 사람이다”의 역인 “사람은 나이다”가 성립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즉, 공손룡은 오로지 첫 번째 의미에만 집중하여, 습관처럼 받아들여지는 두 번째 의미와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공손룡의 논리 전개는 흰 말(A∩B)은 말(A)이 아니다(≠)로 결론을 내지만, 이 문장을 듣는 우리는 관습적으로 흰 말(A∩B)은 말(A)이 아니다(⊄)로 받아들이면서 혼동이 된다는 말입니다.

제 블로그의 커버 이미지 좌측을 담당하는 아래 그림은 이처럼 의미가 확실하게 정돈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타나는 궤변을 상징합니다. @wakeprince 계정은 깊은 사고思考보다는 좀 더 가벼운 감상感想을 적을 요량으로 생성한 까닭입니다.

모쪼록 @wakeprince가 제 짧은 생각과 여러분의 고견이 소통하는 창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참고문헌

Gleick, J. (2017). 인포메이션 . 박래선, 김태훈 (번역). 서울 : 동아시아 (원전은 2011년에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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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keprince님 안녕하세요. 개수습 입니다. @bookkeeper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대문 black이 이쁘다

고맙소! 찡 덕분이오!

흰대문은 대문이아니다.

ㅋㅋㅋㅋㅋㅋ똑똑한데?

찡자는 또또또똑똑똑 !
정신세계가 다양하죠. 데굴데굴 굴러요.

기대했더니 여전히 쉬운 글이 아니다.
또 이 왕자한테 적응하려면 한 달 걸리겠군요!
(뭐 그렇다고 수준을 낮출 필요는 없어요.ㅋㅋ)

토막 지식과 일상을 버무려 볼 생각입니다ㅎㅎ

음 이건 구체적인 백마가 곧 말 일반이 아니라는 의미였던 것 같은데 오래전에 본 얘기인지라...ㅎㅎ

말의 개인적 수입을 금지했던 조나라에 공손룡이 흰 말을 타고 들어가다 잡혔는데, 저 궤변으로 빠져나오려 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ㅎㅎ "흰 말은 말이 아니오!"라고 말이죠.

실제로 공손룡이 한 논리 전개는, @jamieinthedark님이 말씀처럼 범주가 달라 등호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이지만, 일상어로 전환하였을 때 언어의 관습성과 이중성 탓에 생기는 혼란을 노린 것입니다.

넵, 저 말(not horse)을 한 맥락은 분명 궤변이 필요한 상황이었을 것 같네요. 논리로서의 의미는 아마 나중에 끼워맞췄을지도...

꿈보다 해몽이었을까요ㅋㅋㅋ

오오 저는 이런거 좋아해요 옛날 이야기 역사 이야기 +_+

감사합니다! 저는 저 교집합식이 이해하는 데 굉장히 적합하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받아 들이실지 잘 모르겠습니다.

완전 교집합 그림 보고 한 방에 이해 됐어요 ㅋ
말장난 같은거 아닌가욤?
말이 안되지만 말이 되는 ㅋㅋ

그렇습니다ㅋㅋ 좀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아 몇 줄 추가해 보았습니다.

ㅋㅋㅋ. 스팀잇 다중인격 신드롬으로 두개의 분열개체가 생성되셨군요.
이럴땐 이노래를 빼면 안되지요.

ps. 결코 가벼운 소재가 아닌데요?

저는 이 노래를 바칩니다ㅎㅎㅎ

“나는 사람이다”의 역인 “사람은 나이다”가 성립하지 못하는 것

여기에서 이해가 가네요 ㅎㅎㅎㅎ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새로운 계정을 소개하는 재미있는 글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의미론자들이 찾아와서,

후자의 의미로 “나는 사람이다”의 역인 “사람은 나이다”가 성립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대목을 보고, 한정사quantifiers 논쟁에 바로 뛰어들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재미있는 토론과 소통의 장이 될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문장의 의미론에 대하여 @rokyupjung님께서 언제 한 번 포스팅해주시면 유익하고 재미있겠습니다ㅎㅎ

의미론 저도 잘 모릅니다. 오래전 언어학 공부할 때보니 의미론자들이 한정사 가지고 치고박고 싸우더라고요..ㅋ 아무래도 한정사가 언어적으로 상대성도 강하고, 의미를 규정하기 어려워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만 해봤습니다. 사실... 저희 아내가 의미론 전공인데.. 좀 물어봐야 겠군요..^^

초면이지만 초면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블로그네요.

오랜만에 논리기호를 보니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 논고 읽다가 미칠 뻔한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읽다가 포기했지만 제 정신을 지켰으니 만족하고 있습니다.

초면에 반갑습니다 소요님ㅎㅎㅎ

@sleeprince 님과 무슨 관계가 있으신가요? ㅜㅜ 어려운 글을 쓰시는 또 한 분. 반가워요 ㅎㅎ

@홍보해

감사합니다! 그와의 관계는 제 소개글을 보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ㅎㅎ

와우~~~ 제가 한국에서 뻘짓하는동안 이런 어려운 작업을 진행중이시군요!

좀 덜 무거운 글을 쓸만한 계정이 필요해서 새로 하나 팠습니다.

더운날이 안 더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 땀나!!

무더운 날은 더운날이 아니다!

쌍둥이 형 자고 있나.ㅋㅋ

곤히 자고 있습니다ㅋㅋㅋ

재밌게 보고 갑니다. 고등학교 다닐때 몇번을 폈다가 접기만 했던 정석 수학책의 1단원을 보는 것 같아 반갑기도 하네요. 비트코인은 코인이 아닌건가요ㅎㅎㅎ

그런 셈입니다ㅋㅋㅋㅋㅋ

다 거짓말이었어... 가볍다고 하더니...
깬왕자는 왕자가 아닌 것이었어...
ㅋㅋㅋㅋㅋㅋ

그렇습니다. 저는 사실 왕자가 아닙니다ㅋㅋㅋㅋ

갑자기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지네요^^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자유'라는 단어를 빼고 싶어했는지도 모르죠 ㅎㅎ

'자유'라는 단어의 해석에서부터 갈리니, 자유민주주의는 또 얼마나 말이 많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