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월호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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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세월호에 대해 한 번도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처음으로 말한다. 나의 세월호를.

4년 전 나는 학생이었다. 다니던 학교는 안산, 그리고 단원구에 있었다.

수업 때 처음 그 소식을 듣게 되었다. 교수님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동기가 밝게 이야기했다. "전원 구조됐대요!"

저마다 각자의 세월호가 있을 것이다. 나는 세월호를 떠올리면 그때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끈질긴 아픔이었다. 모든 사람의 아픔이고, 괴로움이었다. 끝없이 새로운 기사를 봤지만 원하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안산은 침통했다. 고요했던 중앙동 거리와 축 가라앉은 학교가 떠오른다.

6월쯤, 안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단원고와 유독 가까운 학교였다. 친구들을 보내고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한다고 했다. 그 중엔 유가족도 있다고 했다. 아이들을 위해 작은 음악회를 열어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성사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조심스러운 시기였다.

나는 참 오래 침묵했다. 지금껏 노란 리본도 한번 달지 않았다. '보여주기'식 애도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4년이 지난 지금, 그래서 내가 했던 그 잘난 애도는 무엇인지 자조하게 된다.

정권이 바꼈다. 그것만으로도 나의 세월호는 치유될 수 있는 아픔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 우연히 '선실'이라는 단어를 보게되었다. 그 단어만 봐도 나는 세월호가 떠오른다. 그리고 다시 못 견디게 아파진다. 세월호는 시대의 트라우마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안산 합동분향소가 철거된다. 뙤약볕 아래 조문을 기다리던 나와 수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긴 기다림에도 어느 하나 소리 내지 않고 숨죽이던 그 뜨거운 공기의 여름날이 떠오른다.

우리 모두 잊을 순 없겠지만, 너무 아프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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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 평범한 군 장병 중 하나로 살아가고 있었어요.. 근무 중 티비로 보이는 일련의 장면들이 모두 어떤 다큐멘터리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던 기억입니다.. 그 날의 아픔을 더욱 더 가까이서 느끼셨겠다고 생각하니 그 감정이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오늘은 날씨도 좋네요. 슬픕니다.

거리는 가까웠지만 심적거리도 그정도로 가까웠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날씨가 좋아서 슬프고, 날씨가 안좋으면 날씨가 안좋아서 슬플 날이에요. 감사합니다.

위로를 담아 댓글을 답니다. 마지막 문장을 곱씹어봅니다. 아프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아픔이 삶을 잠식하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제 아픔이 삶을 잠식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가끔 떠오를 때, 괜스레 울컥하거나 마음이 저릿저릿한 기분이 들 뿐이죠. 따뜻한 위로를 감사히 받아 저보다 더 힘들었을, 그리고 지금도 많이 슬퍼할 분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합동분향소가 철거가 되는군요. 뭔가 기분이 이상하네요.
상처의 흔적이 없어질 수는 없겠지만 아픔은 줄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자리엔 또 무엇이 들어올지 문득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오고 가며 많이 봤던 곳인데 여러가지 생각이 드네요.

보여주기식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큰 상처는 우리 모두 서로 같이 치유해 가야해서 여러가지 형태로 애도하고 치유해야 될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참 많이 아프고 슬픈데 가족들은 오죽하겠습니까!

맞습니다. 말하고나니 마음이 한결 편한 것도 같습니다. 오늘만큼은 모두 슬퍼해도 괜찮겠지요.

오늘 jtbc에서 하늘에 있는 아이들에게 쓰는 부모님들의 메모 편지가 일부 공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