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in #kr7 years ago (edited)

#1
나는 페미니즘에 관해 한 번도 내 생각을 밝힌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페미니즘이 뭔지 잘 모르겠다. 그와 관련된 꽤 많은 양의 활자를 읽었지만 '잘 모르겠다'는 생각은 동일하다. 더불어 지금 내가 알고 이해한 것 이상을 원하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페미니즘 운동이 여성차별에 관한 문제이고

기회의 평등or 결과의 평등
남성과 여성을 어떤 기준에서 같고, 어떤 기준에서 다르다고 볼 것인지

에 대한 고민과 가치판단이 수반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각 부분의 담론에 대해 조금씩 더 아는 것은 있지만 별 의미는 없다고 느껴진다.

#2
솔직히 꼴 사나운 모습을 많이 봤다. 스팀잇을 시작한 건 페미니즘 논쟁이 한 풀 꺾이고 난 이후였기 때문에 주로 언론 기사나 페이스북에서 본 것이 많은데 전부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남자 쪽의 의견이 그 것에 해당한다. 급진적이냐 중도냐 보수적이냐 (제발 이 용어들을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는 습관을 버려 주시길 바란다.)에 관계없이 여성들이 어떤한 태도를 가지느냐는 편견없이 바라 볼 수 있었다. 각 입장을 대변하는 이들에게는 본인의 경험과 주변 사람의 상황과 현재 속해 있는 집단의 성격 등 많은 고려 사항이 있었을테니, 그 것들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의 (꽤 극단적으로 갈리는) 편차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 단, 여자들이 그들의 차별이나 권익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 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급진적 여성 페미니스트들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은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나타났다. 조금 심하게 말해서 나는 그 들 중에 진정으로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당연하지 않은가, 남자이면서 어떻게 그렇게 첨예하고 생생하게 여성 차별의 심각성을 느껴 봤다는 말인가. 설마 주변에서 그 현장을 목격하거나 당사자의 상담자가 되어준 것을 가지고 직접 경험과 동질의 간접 경험을 해봤다고 판단하는가? (실제로 그런 류의 이야기를 서두에 많이들 꺼낸다. 자신은 이러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여성들의 아픔과 마음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고..)

#3
그건 거짓말이다. 어떻게 남성이 여성차별의 실상과 폐해를 중도 성향의 여성 페미니스트들보다 예민하게 인지할 수가 있을까. 매우 깊을 수도 있는 동정심과 여성이 차별때문에 느끼는 아픔에 대한 공감, 폐단을 개선하도록 촉구하는 과정을 도와야겠다는 책임감 등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자신을 여성과 동일시 하면서 내뱉는 발언과 남성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그 공격성은 글을 끝까지 읽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러한 현상을 반기는 여성들이 많다는 점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남성이 남성을 공격했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고 남성이 여성 편을 들었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이 아니고

그 어떤 사람도 타인에 대해 '완전히 공감' 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인류 역사상 등장한 적이 없던 '100% 타인 공감형 인간'이 왜 페미니즘 주제 아래서만 대거 등장했냐는 점이다.

누군가 일침을 가해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점이 매우 불쾌하고 그런 척을 하는 남성들이 꼴사납다. 대개 그런 성향을 홍보하는 듯한 모습이 보이고 그 이면에는 여지없이 이권이 개입해 있지

#4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남성이기때문에 여성차별에 대해 무감각한 사람들이 벌이는 가해를 받아본 적이 없고 그 고통과 슬픔을 헤아리지 못 하겠다. 하지만 나는 인간에 대한, 조금 더 나아가서 종(동물과 식물을 포함)에 대한 차별 문제에 관심이 있다. 그 핵심은 '고통감수능력'이다. 누군가(무언가)에게 고통을 줘도 되는지, 주면 안 되는지에 대한 기준은 오직 '그 대상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 없는지'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참고: 밀알 같은 철학2, 아주 기본적인 내용만 나와 있습니다. 홍보 맞습니다. 여유 있으시면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 추천 드립니다.)

나는 종차별 문제에 대해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듯(베지테리언이 되어야 하는지...) 여성차별 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정한다. 대신 '고통'이라는 단어는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 심리적 등등 내가 아는, 인간이 감수(感受: 외부 세계의 자극을 감각 신경이 받아들이는 일)할 수 있는 모든 범위로 영향력을 극대화 시켜서 가정한다.

#5
나는 군대에서 후임을 괴롭히면 안 되는 것과 직장에서 여성 직원을 괴롭히면 안 되는 것이 다른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내 비유가 멍청해 보인다면 댓글로 지적해 주셔도 좋다.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길에서 누군가 뒤를 따라오면 앞서 가는 이가 남자라도 불안하고 무섭기는 매한가지이다. 나는 무섭다 그러면 앞 사람의 마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안심할 수 있도록 조금 돌더라도 다른 길을 택한다든지, 아니면 잠깐은 그 고통을 심화 시키겠지만 얼른 그 사람을 앞서서 간다든지..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았지만 여성들도 결국 이런 배려들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는가? (남성의 배려 따위는 필요 없다고 하실 문제가 아니다. 나는 앞서가는 이가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이런 배려를 한다. 이 모든 것은 남성vs여성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 단위의 의식 개선이나 정책적 변화 등은 내가 관심 가지지 않았다. 이게 내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증거이다. 그들만큼 예민한 감각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에 신경쓰지 않았으니까..

#6
그리고 펜스룰은 현재도 많이 이야기 되는 소재이므로 그 생각을 말해보자면, 대체 그게 뭐하는 짓이냐.. '자연스러운 어울림'이라는 감각을 정말 몰라서 그런 행동을 하는거야? "나는 친밀함의 표현이었는데 그 여성분은 그렇게 느끼시지 못 했나보다" 류의 발언이 진심에서 나오는 겁니까? 실화야?? 그 감각 없으시면 펜스룰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펜스 치셔야 합니다.

각 개인의 감수성 차이를 고려해서 다소 간의 오해는 있을 수 있다. 당사자 간에 한 쪽에서 오해나 의심이 발생했을 때 그 것을 불식시키거나 사과를 해야함은 가해자의 몫이다. 이 것은 남성과 남성의 다툼이든, 여성과 여성의 갈등이든, 남성과 여성의 문제에서든 동일하다. 물론, 가해자가 상급자이면 문제가 복잡해지는 측면이 있다. 현재 미투 운동의 사례들도 그 것이 원인인 경우가 많고.. 하지만 페미니스트가 아닌 내 입장에서 페미니즘 자체는 매우 개별적인 성격을 가진 관념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특정한 소수가 성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7
난 엄마랑 엄청 친하다. 그리고 9살 차이 나는 늦둥이 여동생도 있다. (또 누군가의 레퍼토리처럼 가족 중에 여성들 있어서 페미니즘 의식이 정착되기를 소원 한다는 내용아님 그리고 그게 어떻게 소원의 이유가 되냐 엄마 없는 사람도 있냐)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하지만 아빠가 직장에서 차별 받으시기를 원치 않는 것처럼 엄마가 일상에서 여성이라서 불쾌한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불친절을 당하기 싫은 것처럼 동생도 어디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빠같은 어른들에게 예의 바르게 하고 엄마같은 분들에게 친절히 대한다. 그리고 동생같은 애들에게는 투명 인간처럼 행동한다. (펜스룰 아님, 그냥 그게 가장 서로 편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서 그래..)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이 말이 내가 여성혐오자라는 뜻인가? 다시 말하지만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동어 반복, 수미쌍관 죄송

유아인.PNG

유아인의 페미니스트 관련 발언과 제 글은 관계가 없습니다. 유아인 씨가 뭐라고 했는지도 정확히 모릅니다. 저는 어제 밤에 쓴 글에 담긴 논지의 연장선 상에서 "유아인을 좋아합니다" (라고 선언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다.)

유아인의 연기를 보시려면 영화 '사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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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페미니스트 적인 내용이네요 ㅎㅎ
올바른 페미니즘의 틀이란건 없으니까요
각종 차별에 민감한 자세 그 자체가 페미니즘의 범주 아닐까요
자신과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외칠 때 그 외침을 들어주려고 노력하기만 해도 충분하다 봅니다
그 고통은 너만의 고통이고 너만의 착각이고 니가 오버하는거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는 스탠스를 취하지만 않는다면야 뭐

감사합니다. 또이님. 앞으로 또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ㅋㅋㅋㅋㅋ

그러세요 ㅋㅋㅋ 원래 또잉또잉! 하는 사운드에서 따온 “도이”라서 또이가 더 목적에 맞아요 ㅋㅋㅋㅋ

누가 SNS로 페미니스트니 아니니... 그런말 여자인데도 듣기싫어요 솔직히ㅠ 소모적인 논쟁은 제발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일상에서 모두에게 성실했으면 해요. 저도 유아인을 좋아합니다. 근데 정말 SNS 안했으면 좋겠어요. 배우로서의 유아인이 워낙 연기를 잘해서 아직은 살아 있는데 배우로서 좋아하는 저로서는 위태위태 할 때가 많아요. 또 무슨 소리 했나요? 요새는 연예뉴스를 보지 않아요. 실검에 뜨지 않는 이상은. 네이버에서 연예 란을 삭제했거든요.

그리고 닉네임 챌린지 안하시나요? 본명을 알거 같아서 ㅋ

저도 기다 아니다가 싫은데 관심 끌고 싶어서.. 제목을 저렇게 선언하는 문장으로 했습니다. 유아인이 페미니스트 관련 발언을 한 것은 아마 몇 달 전일 거에요. 저도 전문을 읽지는 않아서 내용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닉네임 챌린지는 누가 지목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뭔가 중요 부분을 들킨 기분이 듭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아무도 지목을 안했어요? 요새 인기쟁이라 내가 지목안했어요. 그런분들 했다가, one of us... 되는게 싫어서 ㅋ

네.. 예전에 그 얼음물 샤워 하는 챌린지도 꼭 해보고 싶어서 집에 양동이도 사다 놨는데 아무도 지목을 하지 않았어요.. 저도 그 분들 돕고 싶었는데.. 그래서 그냥 기부하는 루트를 찾아서 돈만 보냈습니다. 양동이가 아까우니 지금이라도 할까요..조금 더 더워지면

ㅋㅋㅋㅋㅋㅋ 안할거 같아서 안했어요 사실. 나 그런거 안해요 이럴까봐.

"나는 군대에서 후임을 괴롭히면 안 되는 것과 직장에서 여성 직원을 괴롭히면 안 되는 것이 다른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비유 적절하신걸요. 이 한마디에 진리가 담겨 있어요. 저는 여성이고 페미니스트입니다.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여성이시고 페미니스트인 분의 검토를 받고 나니..아주 조금은 마음이 홀가분해짐을 느낍니다. 제가 실수한 부분은 없나 글을 여러 번 다시 읽고 있었습니다 ㅜㅜ 감사합니다. 자주 교류하면 좋겠습니다 ^^

아아닛! 검토라니요! 저도 늘 저 자신을 검토해보고 한계를 발견하고 확장 중인 페미니스트입니다.

저는 페미니즘이 아주 중요한 문제인 젠더 차별과 함께, 여기 이 글에 쓰신 "인간에 대한, 조금 더 나아가서 종(동물과 식물을 포함)에 대한 차별"에 문제제기하는 것이어야 하고, '서구백인남성'을 디폴트로 상정해온 근대적 지식의 기반 자체를 흔드는 것이어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여하간 반갑습니다~!

네.. 논문때문에 고통(?)이 심하신 것 같은데, 스팀잇에서라도 힐링 하시기를 바랍니다! ^^

좋은 글 잘 읽고 보팅하고 갑니다. :D 참으로 올바른?! 시각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페미니즘에도 여러 종류와 분파가 있지만 너무 잘못된 주장들이 많습니다. 글에서 언급하신것 처럼 남성이든 여성이든 단순히 나와 다른 주체이자 개인으로 본다면 (물론 생물학적 차이는 인정해야겠지요)대부분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을까요? 추후에 저도 페미니즘 관련 게시글을 쓸건데 앞으로 지속해서 소통하고 싶습니다!

네, 부족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소통을 지속할 수 있다면 저에게도 큰 기쁨일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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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후임을 괴롭히면 안되는것과 다른 문제가 아니란 지적에 동감합니다

남직원들에게 유독 야근을 기대(강요)하는 환경, 남녀 과로사 비율 등을 봐도 갑의 횡포는 굳이 남녀를 가리고 있지 않죠 ㅠ

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페미니즘 운동이 왜 성대결로 가고 있는지 안타깝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구분할 필요 없이 인간이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배려를 하기 위해 노력하면 될텐데요..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제가 여성분들이 겪었던 고통을 겪어보지 않아, 현실감 없는 말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동시에 듭니다. 이것이 개인의 한계이겠지요. 저만의 한계일수도 있구요!

저도 페미니스트는 아닌데요.. 사실 저는 윤회를 믿는 편이라..(그러니까 내가 전생에 남자였을 수도 있고..뭐 그런) 여성이든 남성이든 조화를 이루고 더불어 잘 살아가보자..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자. 왜냐면 나와 아무 상관 없는 것 따위는 이세상에 없으니까..식입니다. 이 물러터진 태도를 누군가는 싫어하겠지만, 저는 정말 남성/여성 분리에 집중하는 것보다 통합적인 성 정체성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뭐?)

저도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아주 잘 이해가 됩니다! 윤회에 대한 생각은 깊게 해본 적이 없지만 저는 종교가 불교이기도 하고 약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종종 들러서 댓글까지 적어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