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위로 받기

in #kr-pen6 years ago



위로받고 싶을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대학생 시절의 얘기다. 아빠와 크게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정확히 뭐 때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아빠가 답답했고, 아빠는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딸이 걱정됐을 것이다. 그날 저녁 친구와 약속이 미리 잡혀 있지 않았더라면 아마 아빠와 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돌아가며 잔소리 투척과 대들기를 끝도 없이 반복했을지도 모른다. 아빠와 싸우고 잔뜩 심기가 불편해진 상태로 집을 나선 나는 그나마 오늘 친구와 약속이 있었던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면 아빠와의 싸움으로 지친 마음에 위로가 될 것 같았다.

싸움의 여파로 씩씩거리며 약속장소에 도착했는데 아직 친구가 오질 않았다. 나는 친구를 기다리며 가만히 아빠와의 일을 곱씹어봤다. 왜 나를 이해해주지 않으시는 걸까. 나도 이제 어른인데, 왜 내 의견을 존중해주지 않으시는 걸까. 생각할수록 억울했고, 어서 빨리 친구에게 이 마음을 하소연하고 싶었다. 친구가 내 마음을 다독여준다면 기분이 많이 풀릴 것 같았다.

그런데 친구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우리 아빠가~” 하면서 말을 꺼내는 건 좀 모양새가 없어 보였다. 쪼르르 달려가서 일러바치는 꼬맹이도 아니고. 나도 이제 대학생인데, 내 위신을 생각해야 했다. 친구가 알아서 아빠 얘기를 꺼내주면 제일 좋겠지만, 둘이 만나서 얘기하다가 느닷없이 아빠 얘기가 주제로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 기가 막힌 방법이 떠올랐다. 친구가 먼저 물어보게 만드는 거다.

내 전략은 이랬다. 나는 우선 세상 근심 다 짊어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거다. 그러면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얘한테 무슨 일이 있구나,하고 생각할 테니까. 친구가 나한테 “왜 그래? 무슨 일 있니?”라고 물어보면 그제야 못 이기는 척 “아니, 별 건 아니고. 아빠가 말이지~” 하면서 말을 꺼낼 심산이었다.

친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나는 친구를 기다리며 머리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돌려봤다. 내가 이런 표정을 짓고 있으면 친구가 왜 그러냐고 묻겠지. 그럼 나는 아빠와 싸운 얘기를 꺼내는 거야. “니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 않니?”하고 씩씩거리면 친구는 어느 정도 맞장구 쳐주다가, “니가 이해해. 아빠잖아.”하며 위로해줄 거다. 좋았어. 완벽해.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다. 머리 속으로 이런 저런 대사를 바꿔가며 반복해서 상상하다 보니, 마치 내가 아빠 뒷담화를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마음을 위로받고 싶어서 하는 건데, 꼭 아빠 흉을 보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아빠가 날 미워해서 그러시는 건 아니잖아? 나랑 의견이 다른 것뿐이지. 아빠가 날 사랑하신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내가 오히려 머리 속에서 아빠를 옹호하고 있었다.

게다가 상상 속이었지만 친구가 해줄 가상의 위로까지 여러 번 듣다 보니 집을 나섰을 때 화가 났던 마음도 많이 풀어져 있었다. 기분도 풀렸는데 친구한테 말하지 말까?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그래도 친구가 해주는 위로의 말을 상상이 아닌 실사판으로 듣고 싶었다. 나는 내 전략을 밀어붙이기로 했다.

그때 나는 꿈에도 몰랐다. 내가 예상치 못했던 진짜 복병이 숨어 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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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친구가 도착했다. 우리는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 햄버거를 사들고 테이블에 앉았다. 반갑게 말을 거는 친구와 달리 나는 최대한 계획했던 대로 움직였다. 걱정거리가 가득한 얼굴로 친구의 말에 가능한 짧고 시무룩하게 대답했고, 친구의 시선을 피하고 테이블만 바라보기도 했으며, 때에 맞춰 한숨을 쉬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즐겁게 말을 이어가던 친구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옳거니, 미끼를 물어버렸구만!

“사람이 화가 났을 때는 화를 내지 말고 자기가 화가 났다는 걸 얘기해야 된대.”
어라, 내 얘기를 듣기 전에 조언부터 해주네? 나는 아무런 대꾸없이 친구의 말을 경청했다.
“상대방한테 왜 화가 났는지 설명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 그냥 화를 내버리면 싸움밖에 안 나잖아.”

아, 그렇구나. 나는 아빠와 나를 떠올렸다. 내가 아빠한테 화를 내지 말았어야 했나? 내가 화가 난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어야 했나? 그랬다면 아빠와 싸울 일도 없었을까? 나는 지금이 아빠 얘기를 꺼내고 위로를 받을 적기라고 생각했다. 짧게 한숨을 내쉬고 말을 꺼내려는데, 친구가 먼저 선수를 쳤다.
“내가 약속시간에 늦게 와서 화가 난 거면, 그렇다고 말을 해. 이렇게 화내고 있지 말고.”

눈치 없고 둔한 나는, 약 3초간의 정적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모든 상황이 파악 되었다.

내 작전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아빠 얘기는 꺼내 보지도 못했고, 내 앞에는 굳은 표정의 친구가 앉아 있었다. 나는 ‘내가 친구가 늦게 와서 화가 났으면서도 화가 났다고 말하지 않고 화를 내고 있다’고 오해해서 기분이 상한 친구를 달래주어야 했다. 여기에 오기 전에 아빠와 잠깐 말다툼을 해서 기분이 가라앉았었는데 그것 때문이라고, 너와는 상관없다고. 나는 친구에게 ‘난 절대로, 결단코 너에게 화가 난 게 아니다’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해 애썼다. 다시 친구의 눈을 바라봤고, 미소를 띠었으며, 친구의 말에 좀더 높고 밝은 톤으로 대꾸했다.

우리 분위기는 다시 화기애애해졌고, 아빠의 얘기를 하소연하는 건 물 건너 갔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발걸음은 집을 나설 때보다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리 속에서 돌린 여러 번의 시뮬레이션으로 이미 아빠와는 마음 속으로 화해를 했고, 친구의 오해도 풀렸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 켠이 자꾸 싸했다. 이젠 아빠한테 화났던 것도 누그러졌고, 친구하고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우울해졌다.


아, 내가 우울할 땐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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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금껏 프사가 그냥 머리 긴 남자인줄 알았어요ㅎㅎ 이미 지나간 일이신 것같지만 가끔 이런 엉뚱한 것도 위로가되려나ㅋㅋ

절 남자로 오인하신 게 처음이 아니랍니다. 이 말을 들으시면 위로가 될까요? ㅎㅎㅎ
댓글 달아주시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됩니다. :)

ㅎㅎㅎ 그랬군요.

아마 불이가 '신토불이'할때 불이 정도의 느낌이라ㅎㅎ '브리'치즈로 이미지 수정하겠습니다^^

ps. 곰돌이도 가입하세요ㅎㅎ https://busy.org/@blockchainstudio/gomdory 여기 아무 댓글이나 다시면 됩니다.

곰돌이가 @bree1042님의 소중한 댓글에 $0.017을 보팅해서 $0.006을 살려드리고 가요. 곰돌이가 지금까지 총 1259번 $17.927을 보팅해서 $15.720을 구했습니다. @gomdory 곰도뤼~

바... 바로 당신?
나는 너어에~ 여엉원~ 친구여~ 어어~

저도 항상 밝게 있으려고 노력해요. 간만히 있으면 화난 얼굴처럼 보인다고...ㅋ
여하튼 친구와 오해를 풀고 아버지와의 관계도 개선하는 값진 경험하셨네요~^^

윤복희 씨의 얼굴 표정 때문에 많이 희화화되긴 했는데, 전 이 노래 참 좋아해요. ㅎㅎㅎ

저도 노래만 들으면 가끔 눈물이 납니다
마음 약한 아재가든요^^;;

위로받기 대작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좋은 교훈 하나를 얻었네요ㅎㅎ 어쨌든 친구 반응에 정신이 번쩍 드셨군요ㅋ

넵. 제 어설픈 작전들은 실패로 돌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_-;;

저도 그런 적이 많았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더욱 생각이 많은,,,
부모가 되고 나니 반대의 입장이 되는데...지금의 아이들은 나의 그 시절보다는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접하고 알고 있죠. 내가 어릴 땐, 인터넷도 책도 많지 않아 어른들의 말이 거의 모든 것이었지만,,,다툼?이 끝나고 나면 쌍방이 다 미안하고 불편하고 상대의 말을 더 들어 줄껄하는 후회를 하죠. 결국 입장과 의견의 차이인데...내 본심을 빨리 드러내는 것이 다툼을 빨리 끝내는 방법일수도,,,저는 싸우고 나면 다음 날 아침 아이의 침대에서 조용히 팔베게를 베어주고 안아줍니다. 이걸로 모든 게 해결되더군요. 서로의 마음에 이해가 다소 부족한 게 내가 충분히 설명했던 건 아닌지,,,아빠와 딸은 참 부러운 관계인듯 해요. 전 아들만 둘이거든요.

진짜 싸우고 나면 엄청 후회되죠. 좀 더 들어줄 걸 싶은 마음에..
팔베게를 해주신다니 다정다감한 아빠시네요. 바로 마음이 확 풀어질 거 같아요. :)

그래도 친구분과도 아버님과도 잘 화해(?)를 하셨군요
위로가 아닌 곳에서 위로를 찻으셨네요 ^^

막상 아빠한테는 뻘쭘해서 말 못하고 그냥 어영부영 풀었어요. 아무일도 없었던 듯. ㅎㅎㅎ
친구에게 하듯 하긴 힘들더라고요. ^^;

시간을 두면 감정은 흘러가기 마련이고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이해도 가능해지죠. 멀리속 시뮬레이션으로 이미 위로를 받으셨다니 ㅎㅎㅎ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작전은^_^;

친구분이 늦게 온 바람에 화도 풀리고 친구분은 그게 마음이 걸려있는 상태로 오해가 생겼네요.

생각지도 못한 일로 오히려 수습을 하느라 에너지을 써서 허탈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저라도 작은 위로를 건네봐요. 아예 아버지와 대화가 없는 딸이 여기있습니다. 브리님은 참 좋은 딸이십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오해를 받고, 오해가 쌓이는 일이 종종 있어요.
모든 것은 타이밍인가 봐요. ㅎㅎㅎ
음, 저도 좋은 딸인지는 잘... ㅠ.ㅠ

친구 말을 들었을 때, 엄청 당황하셨을 듯 ㅎ
아.....아냐!!! 너 때문 아냐!!!

진짜 당황했죠. 요새 말로 동공지진! ㅎㅎㅎ

내가 기대고 믿을만한 사람이요.

맞아요. 섣불리 아무에게서나, 혹은 아무것에서나 위로를 얻으려고 하다간 오히려 더 사단이 나는 거 같아요.

제 안에 신뢰하는 힘이 없으면 아무에게도 위로 받을 수 없기도 하고요.

아빠와의 말다툼으로 상한 기분을 친구의 오해로 푸셨네요. :)

예나 지금이나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거 같아요. 그래서 미리 내 기분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렇게 고맙더라고요. :D

저도 눈치가 없어서 말을 안하면 잘 모르긴 하는데, 남들도 제 속을 몰라주더라고요.
제가 얼굴 표정 연기를 잘 못하는 건지.. -_-;;

뜸 들일 필요 없고 먼저 물어봐주길 바라지 않아도 되고 이렇게 훅 - 던지시면 많은 댓글들이 달리는, 얼굴들도 모르는 온라인 공간이 오히려 재빠른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네요.

그렇네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데 이렇게 많이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생각해보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

누군가를 위로하는 일은 일상사이고
내가 위로 밭는 일은 복권으로 생각합니다.
그게 편해서

오늘도 복권 맞는 하루 되세요.
멀리서 따뜻한 마음 보내드립니다. :)

훈훈한 스티미언님들이 위로해줄겁니닷~ㅎ

넵. 안 그래도 스팀잇에서 많은 위로를 받고 있답니다. :)

제가 해드릴게요.^^

역시 마담님! :)

제,,,제가,,, 위,,,,위로를.....

가.. 감사합니다. ^^;

아, 내가 우울할 땐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르..바.

ㅋㅋㅋ
브리님
지혜로운 친구분 덕에 하소연 하는데 실패하셨군요 ㅎㅎㅎ

화내기 전에 화가 났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 이거 누구에게 제가 꼭 전달해줘야겠습니다 ㅎㅎㅎㅎㅎ

아참!! 제가 전에도 여쭤봤는데 궁금한 게 하나 생겼는데요. (영어에서)
'yet'을 사용할 때,

우리 아직 15분 남았어.

이런 상황에서도 yet을 사용하기도 하나요?

댓글이 늦었네요. 죄송해요. ^^;

화를 내지 말고(소리 지르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등) 화가 났다고 말을 하라는 건 특히 육아에 큰 도움이 되는 거 같아요.
하지만 실천은 참으로 요원합니다... -_-;;

아직 15분 남았어, 라고 하려면 still을 쓰는 게 더 좋아요.

We still got 15 minutes.
We still have 15 minutes.

이렇게 쓰면 됩니다. yet이 들어가면 흔히 not과 함께 쓰여서 아직 '아니다'라는 부정의 의미가 있어요. 예를 들면,

It's not 10: 15 yet. 아직 10시 15분 안 됐어.

아니면, 뭔가가 '더' 있다는 '추가'를 강조하는 의미로 쓰기도 하고요. 위에 나온 문장과 비교해보자면,

We still have 15 minutes. 아직 15분 남았어.
We (still) have yet another 15 minutes. 아직 15분 더 남았어.

두 번째 문장에서의 yet은 뭔가 더 추가될 때 그걸 강조하는 의미에요.

도움이 되셨나요? ^^

앗 그제 댓글을 봤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답글 단다는 것을 까묵었네요 ㅠㅠ
헤헷 저는 맞게 쓰고 있었군요 다행입니다 ㅎㅎㅎ 추가를 강조하는 의미도 갖는다니! 잘 알겠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친구덕분에 갑분싸....ㅎㅎㅎㅎㅎㅎㅎ
마지막에 우울했던건 배가 고파서 그런겁니다.

ㅎㅎㅎ 그런가 봅니다.
역시 저기압일 땐 고기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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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사람. ^^

넵. 힘들 땐 가까운 사람에게 기대게 되지요.

토닥토닥..

그 우울함은.. 이래서가 아니었을까요?
시뮬레이션으로는 아빠와 화해했지만,
현실에서는 그대로 앙금이 되어 가라앉았으니까요.

그런가 봐요. 지나고 나면 이렇게 이유도 기억 안 나는 별거 아닌 일일 텐데..

저도 어릴 땐 친구들과 이런 오해가 종종 있었던 것 같아요. 예상치 못한 분위기의 대화로 흘러가는. ㅎㅎ

전 이런 일이 좀 자주 있어요. 내 예상/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
아무래도 작전을 잘 못 짜는 듯 싶어요. ㅎㅎㅎ

굳이 그 이야기를 안 해도 누군가 옆에 있어준다는 게 위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ㅎ 여기 스팀잇에서 저를 찾아와주는 사람처럼.ㅎ
저도 누가 날 위로해 줄까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어..이런 글을.ㅋㅋㅋ 이래서 연애를!!!!!! ㅎㅎ

맞아요. 존재 자체로 위로가 되는 사람들이 있지요. 특히 가족이라면.
스팀잇에서 한 줄의 댓글로도 위로가 되기도 하고요.
연애 고고~!! ㅎㅎㅎ

빼꼼 들러서 도란도란 댓글아래에 약소한 보팅을 놓고가는 것도 위로가 될까요~?

당연하죠, 마니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