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영수의 독백 -첫 번째] 날 수 없는 새, 조(助)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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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니다. 너무나 화창한 날씨였고, 어떤 생명에게도 공평하게 온기를 나누어 주는 햇살 때문에 창을 열어젖힌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았다 뜨니 햇빛이 이미 망막을 파랗게 물들여, 온통 세계가 파랗게 보였다.
눈앞으로 보이는 넓은 공터에는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너 댓 명의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었다. 난 분명히, 그들 부자(父子)가 오기 전에 창을 열었다.

그들 부자가 앉은 곳은, 내가 노곤한 몸으로 턱을 괴고 있던 창에서 한 2미터 떨어진 전깃줄 위였다. 그들은 참새였다. 신기하게도, 그들의 대화가 들렸다. 아버진 아들에게 비행의 고급 기술을 가르치는 중이었고, 다른 또래보다 배우는 속도가 더딘 아들에게 격려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아버지 참새가 먼저 꺼낸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한 위대한 새에 관한 얘기였다. 이젠 전설이 되어 버린 그 이야기 주인공의 이름은 조(助)였다.

조는 꿈을 꾸었다. 날개를 뻗어 유유히 하늘을 나는 꿈이었다. 솜털 같은 깃털을 적신 알 속의 유액이 채 마르기도 전부터 조는 비행을 동경했다. 조는 궁금했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 어떤지.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저 하늘 뒤에 또 하늘이 있는지. 아님 다른 무언가가 있을는지.
그런 저런 생각을 할 때면 기분이 좋았지만, 날기엔 아직 너무 어렸다.

날개 죽지 아래 솜털이 어느 새 깃털로 자라났다. 조는 비행 기대에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구름 사이를 떠다니듯 비행하는 큰 새를 흉내 내어 나지막한 바위 위에 올라서서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기도 했다. 온 종일 그렇게 파닥거린 다음 날이면, 날개며 등허리며 목이며 온 몸이 퉁퉁 부어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가 되었다.

또래의 새들이 본격적인 비행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 조는 자신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날개 뼈가 기형적으로 휘어서 날갯짓을 할 때 비행을 위해 필요한 만큼의 힘을 들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평생 날지 못할 수도 있었다.
또래의 새들은 마침내 동경하던 새처럼 유유히 하늘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조는 더 힘을 내어 연습했으나, 날개 뼈가 점점 더 약해지는 것만 같았다. 어느 날 비행 연습에서 조는 정신을 잃었고, 그의 작은 노력조차도 끝장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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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는 하루 종일 둥지에 남아 있었다. 눈을 감고 날갯짓을 하곤 했다. 다른 새들이 나는 모습을 보면 슬퍼졌기 때문이다. 눈을 감으면 어디든 날아다닐 수 있었다. 새들이 비행을 끝내는 밤이 되면 조는 홀로 하늘을 바라보며 슬픈 눈으로 속삭였다. 난 하늘 당신을 사랑해요. 깃털이 자라기 전부터 그랬는데, 왜 당신 품을 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죠?

조는 기다렸다. 조가 갈망한 하늘이 자신에게 손을 내밀기를. 기약도 없는 기다림이었다. 어느 날 새벽, 모든 새가 잠들었을 때, 조는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비행 시도를 하려 했다. 누군가가 본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기에 조의 심장은 두근거렸다. 넓은 잎사귀를 가진 식물에 맺힌 이슬에 깃털을 씻고 몇 번 허공에다 붕붕 날갯짓을 했다. 준비는 다 됐다. 날개를 좌우로 쭉 뻗고 두 발끝을 살짝 들어올렸다. 그리고 습관대로 눈을 감고 바람과 공기의 흐름을 읽었다. 조는 어떤 결과도 예상할 수 없었다. 땅을 박차고 올랐다. 조는 곤두박질치지 않았다. 오히려 또래의 새와 큰 새들보다 더 높이 날고 있었다. 그의 오랜 기다림 속에서 하늘은 조에게 공기의 흐름을 세밀하게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했고, 조는 다른 새들보다 훨씬 적은 힘을 들이고도 날 수 있었다.

날이 밝자, 모든 새는 조의 비행을 놀라워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조의 결심이었다. 조는 다음 날 두 개의 호수와 세 개의 산 너머에 있는 ‘압제자의 숲’으로 떠나갔다. 그곳에 비행을 할 수 없는 불비조(不飛鳥)들에게, 하늘을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온갖 육식 짐승들이 득실거리는 그 위험한 숲에서 조는 수많은 불비조들에게, 새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하늘을 가질 수 있게 도왔다. 이제 조는 전설이 되었지만, 아직도 수많은 조들이 불비조를 위해 숲을 찾아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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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늘어진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잠을 깼다. 짹짹거리던 참새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고무줄을 하던 여자애들은 종목을 공기로 바꾸었다. 세계는 온통 파랗게 보였다. 내 한쪽 볼에는 창틀의 홈 자국이 생겼고, 창틀엔 침이 약간 고여 있다.
참새의 이야기를 알아들었던 것이 잠 속에서 일어난 일인지 실제였는지는 지금까지도 분명치 않다. 다만 난 내 주위에서, 조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한때 목을 조이듯 존재를 숨 막히게 하던 상처가, 위대한 일의 견인력이 되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한 기적이란 말인가.


*작가의 변

안녕하세요. 소울메이트 에세이스트입니다.
엽편소설은 나뭇잎처럼 작은 분량의 소설을 뜻합니다. '영수'를 주인공으로 한 저의 소설입니다. 에세이와 더불어 이렇게 짧은 소설부터 올려보겠습니다.

소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올릴 예정입니다.
주인공은 같지만, 짧은 한 편으로 완결되는 소설이니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겁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Soulmate essayist by your 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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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도 항상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아름답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아서 이런 아름다움을 동경하게 되나 봅니다.

현실이 너무나 무겁게 짓눌러 생이 찌그러지고 짓눌려 타인이 이 상처를 비정상, 장애로 봅니다. 스스로를 부단히 갈고닦으며 하늘을 꿈꾸기엔 이제 너무나 지치고 고단합니다. 저 소설의 조가 스스로가 되기를 꿈꾸고 또 그리게 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답지 못한 현실일수록 더욱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나아가야 희망이 있지 싶습니다^^ 글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잘 읽어내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찌그러진 생을 딛고 일어나 위대한 조가 되어 날아오르시길 소망합니다
! 자주 뵙도록 해요^^

단숨에 읽어 내렸습니다. 필력이 대단하시네요 ㅠㅠ 글도 너무 읽기 좋습니다. 좋은글 또 기대할게요 ㅎㅎ

칭찬과 격려 감사합니다! ^^ 좋은 이웃으로 글 함께 나누기를 기대합니다~~ㅎ

@glorias님 흑백사진 올리는 챌린지에 추천했는데 괜찮으신지요? 이걸 계기로 블로깅 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앗 ㅎㅎ감사합니다. 그거 보긴 했는데 사실 저는 블로그 해본적도 없고 글재주도 없어서 좋은 글들 읽고 힐링만 하고 있었어요 ㅎㅎ움 ...흑백사진 찍어서 올리는거라 막 너무 어렵진 않을거같은데 ...ㅎㅎ

네 사진만 올리는 거라 어렵지 않더라구요^^ 그렇게 작은 걸음으로 시작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ㅎ

그래요!! 이세상에 못쓴 글은 없어요! 스스로 만족을 못하는 글만 있죠!!

동감입니다!^^ 나의 이야기가 글로 피어나는 순간 모든 게 다 어여쁜 꽃입니다.

한땐 열정이자 사랑이고 희망이었던 것이 꿈을 꾸는 것이었죠
조금은 이상주의자였던터라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가치가 더 좋았던 거 같아요
그렇게 여러해 보내면서 나름 힘껏 뻗어보았지만 닿을 수 없는 꿈은 점차 무거운 짐으로 변질되어가더군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약함은 참 좋아하고 꿈꾸었던 일과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던 사랑, 그 둘을 동시에 떠나보내게 만들었네요
멍하니 무기력하게 꽤 오랜시간을 보내고 나서 알게 되었어요.
그동안 얼마나 스스로 틀에 가두어 놓고 살았는가를.
꿈, 기대조차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왜곡된 거울이었던것을.
지금은 욕심을 인지하고 덜어내는 것이 좋아요.
비울수록 가벼워지는 것도 좋구요.
그저 나답게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든 것, 그 일상에서 느껴지는 자유함이 좋아요.
꾸밈없이 그저 하루를 원하는대로 사는것이 좋습니다.

때론 예기치 않은 선물과 같은 인연에 대한 기다림이 마음을 설레게 하는데 오늘 kyslmate님 글에서 기다림을 읽어내서 마음이 동했나봐요
주절주절 길게도 썼네요.
그저 편안히 마음가는대로 글 남겨주세요.
위대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걸요!!

한때 꿈꾸었고, 또 그것으로 인해 상실한 아픔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글을 읽고 그 글을 거울 삼아 이렇게 투명하게 자신을 비추어 보일 수 있다는 걸 볼때 @ryuie님은 맑고 깊은 분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자유함을 느끼며 지내신다니 참 다행입니다. 이상과 현실의 경계를 찾아내고 삶을 영위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과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꿈꾸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꿈의 한 가닥은 늘 놓지 말고 지냈으면 합니다.

스티밋에서 좋은 이웃을 만난 듯 합니다. 글을 기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주 뵈어요ㅎ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행복한 연말보내세요.

감사합니다. 감동을 느끼시는 것만으로도 힘이 됩니다. ^^

기형인 참새의 놀라운 비행 감동이었고 사진속 깨진 블럭이 인상적이네요~~^^

스마트컴님, 감동 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우연히 리스팀된 조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단숨에 읽었답니다. kyslmate님 다음편도 기다릴게요^^

감사합니다~~^^ 기다린다는 말이 참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ㅎ

고양이의 말을 엿듣던 하루키 소설의 카프카가 떠오르네요.

sevendaybnwchallenge의 제 첫 러닝메이트로 초대합니다.
글 만큼 좋은 사진으로 감동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해변의 카프카, 한때 열심히 읽었더랬죠ㅎ
sevenday,, 그거 흑백사진 올리는 거 맞죠? 오다가다 봤는데, 한번 잘 찍어볼게요^^

정말 고맙습니다. 요새 닫혀 있던 마음이 스팀잇을 통해 열렸는데 이렇게 받아 주시니 더욱 더 고맙고 반갑네요. 정말 좋은 글 곁에 두고 지낼 만큼. 친구의 뜻 처럼 읽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받아주심에 고맙습니다.

이곳 스팀에는 조와 같은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작가님을 포함해서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스팀의 조들도 모두 아픔을 이겨내고 비상하길 바랍니다. 자주 보도록 해요^^

이런분이 스팀잇에 들어온건 진짜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ㅠㅠ 약소한 풀보팅..!

여러 님들의 포스팅으로 보며 이곳에 대한 일종의 사명감 같은 걸 엿볼 때가 있습니다. 저도 이곳을 좀 더 다채롭고 풍성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조그마한 사명감을 가지겠습니다^^ 격려 감사합니다!ㅎ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주 뵈어요.

직접 쓰신 소설이었군요...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글로 눈과 상상을 호강시킨건 오랜만인것 같네요 ㅎㅎ 앞으로 자주찾아뵙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제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파장을 만들어낸 것이 제게 참 기쁨을 줍니다. 기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뵙겠습니다^^

와! 우리 스팀잇에 작가 한분 또 오셨네요! 환영과 축하를 아울러 드려요!

환대 감사합니다! ^^ 타타님 그림 참 따뜻합니다. 자주 뵐게요.

글을 다 구독하고 즐거움으로 다가와졌지만
동시에 허무감이 오기도 하네요

소설에서 이루어지는 해피엔딩이
현실로 눈을 조금만 돌리게 된다면 오게 되는
현상과 현실에서 말이죠...

현실은 소설보다도 더하다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긍정의 의미로 들려지기를
글을 쓰면서 바래봅니다

잘 보고 갑니다.

P.S
소설에 나오는 참새 조는
어떻게 날개에 입사귀를 맬 생각을 했을까라는 호기심이
들었던건 안 비밀하려고요(웃음)

소설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도 있지만, 이 세계에 필요한 것을 이야기하기도 하지요^^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후자라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현실과 상상의 괴리가 있어 우린 잠깐동안이라도 희망을 가져볼 수 있지요.

조는 날개에 입사귀를 매진 않았습니다.
'넓은 잎사귀를 가진 식물에 맺힌 이슬에 깃털을 씻고' 단지 깃털을 씻은 것이고, 조는 둥지에서 절망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발달한 다른 감각 때문에 날아오릅니다^^ 진솔한 코멘트 감사합니다!

그러잖아도 주인공의 이름이 助라는 것부터 심상찮았습니다.
역시나 그 전개가 ㅎㅎ
역시 이름대로 되는 모양입니다.
벌새였던가요? 과학적으로는 날 수 없다던데 실제로 잘만 날고있는
때론 힘든 상황에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치않은 몸을 보여주던 동기부여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tip!

네, 이야기에 맞춘, 의도한 작명이지요.^^ 작고 연약한 누군가가 분연히 일어서서 주변을 따뜻하게 덮히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힘든 이들에게, 벌새도 새다! 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새처럼 보이지 않아도, 당신은 존엄한 형상을 가진 인간이고, 인간은 꿈꾸고 그걸 이루어갈 수 있는 존재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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