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시를 쓰는 사람은

in #kr7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아직도 뉴비 @armdown. 철학자입니다. (armdown은 '아름다운'입니다.)

현대시는 갈수록 난해해지고 있습니다.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그리 한다 합니다. 이게 과연 올바른 길일까요? 몇 자 단상을 적어 봅니다.




오늘날 시를 쓰는 사람은 자신의 사고와 직관 능력에서 산문적 치열함의 결핍을 숨기기 위해 시로 위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

오늘날 시는 음악과 분리되어 과거의 운문이 지녔던 힘을 상실했으며, 단지 종이 위에 끄적인 산문의 조각에 불과한 것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가 아니라 아포리즘일 것이며, 행갈이를 한 산문에 불과할 것이다.

과연 음악과 분리된 시정신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리듬을 잃어버린 시가 여전히 시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침묵 속에서 쓰고 읽히는 시는 시가 아닐 터. 시인이 이제 맞부딛혀야 할 상대는 과거의 시인이 아니라 차라리 고금의 산문일 것이다. 이를 통해 여전히 살아 있는 리듬을 찾아내고 발명해야 하리라.

이른바 오늘날의 시인은 자기 식의 산문 형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며, 산문 형식을 창조하는 능력의 결핍을 숨기기 위해 미완의 산문인 침묵의 시로 도피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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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신선한 시선이네요. 산문적 치열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시를 써야한다거나 산문적 치열함이 시에서 요구되어야 한다 - 올바르다는 느낌으로 읽힙니다.

시에 관해 재미있는 예술 취향을 가지신 것 같습니다. 다만 '산문적 치열함의 결핍' 그리고 '산문 형식을 창조하는 능력의 결핍'을 숨기기 위해 시를 쓰는 것 아니냐는 이른바 의심의 취향은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논의를 풍성하게 하고자 질문을 드려볼까 합니다. 사실 이 글에서 제가 @armdown 님께 궁금한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취향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에, 다른 지점을 더듬어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1. 산문적 치열함이 시(時)에 과연 요구되어야 하는가.
  2. '산문' 형식을 창조하는 능력이 시(時) 작성에 요구되어야 하는가.
  3. 현대의 시는 과연 과거의 운문이 지닌 힘을 가져와야 하는가.
  4. 음악과 결합되어야만 시가 시로서 의미가 있는가.
  5. 리듬을 잃어버린 시는 침묵 속에서 존재하는 것인가.

그나저나 언젠가 '오늘날 철학을 하는 사람은' 이라는 글도 한번 볼 수 있다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

의견과 질문을 길게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질문에 대해 제 생각을 짧게 적어 보겠습니다.

  1. 시의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라면 '치열함'을 요구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재능이 없으면 치열해도 소용 없고요. (제가 하나마나한 얘길 했네요.)

  2. 앞의 1번 답변과 겹칩니다. 그러나 시도 어디까지나 '구성의 미'를 획득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하면, '형식'의 능력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점에서는 오규원의 시론(시작법)에 많이 동의하는 편입니다.

  3. 시가 오랜 시간 동안 지니고 있던 '리듬'은 오늘날에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걸 저는 '과거의 운문'의 힘이라고 보았고요.

  4. 음악과 시가 공유하는 장점이 '리듬'이라고 봅니다. 시를 다르게 접근하기 시작하면, '짧은 산문' 이상이 되기 어려을 것 같습니다. (물론 좋은 산문은 리듬도 지니고 있지요.)

  5. 시가 소리나지 않게 되면 산문과 구별되는 지점이 어디일까 궁금합니다.

서로 엮인 질문이라서 한데 묶어 답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철학'과 관련해서는 꾸준히 포스팅하겠습니다.
(이미 몇 개 올리기도 했고요. 가장 최근 글은 언어를 권력화하는 인문학자였네요.)

네. 달아주신 댓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시를 바라보는 전제와 관점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일단 예술과 옳고 그름이라는 기준이 별로 상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름다움' 이라면 모를까요. 문제는 저자께서 현대시를 비평하시는 부분들이 과연 '시' 라는 장르의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기준인지 검토해봐야 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먼저 what is '시' 인지 정의를 내려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가볍게 써 본 느낌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네요.
'시'의 정의까지 가게 되면 너무 거창해지고요, '시'가 리듬이 없다면 그것이 '시'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정도까지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진지하게 접근하는 이유는, "이게 과연 올바른 길인가요?" 라는 의문 때문입니다.
옳고 그름은 의무와 강제 그리고 처벌을 함축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 문학에 이르기까지 "이 것이 옳은 길인가? 라는 질문을 한다는 것은 "잘못된 시는 처벌/제제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올바른 시를 써야 한다" 라는 뜻을 땡겨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께서 말씀하시는 이게 과연 '시'인가? 라는 질문은 이해하고 있으며, 글을 읽었을때 저자께서 어떤 기준으로 시가 시 답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겠습니다.

그런데 글의 처음에 "올바름"을 논하셨고
저는 이것이 뜻하는 바가 있으시든
단지 일상적인 소통을 위해 사용하셨든
서로에게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자께서 시 답지 않다고 보시는 시를 쓰는 시인이나 지망생들이 이 글을 봤을 때는 "자신들은 올바르지 못한 길을 걷고 있으며, 처벌받아야 한다" 는 뜻으로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비록 그것이 저자님의 본 뜻을 오해하는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취향의 문제에서 '올바름'을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먹어야 할지 찍어 먹어야 할지를 말할 때 '올바름'이 끼어들기 어려운 것처럼요.

저는 저의 예술 취향을 언급한 것입니다. 나아가 시인(이나 시인 지망생)이 제 얘기에 귀를 기울일 이유도 없습니다. 대부분 그냥 무시하거나, 잠시 멈춰 생각해 보는 정도겠지요.

그렇더라도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 시를 읽을 이유는 없는 거지요. 그 정도로 보시면 좋겠네요.

랩이 컨템포러리 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래퍼는 시인 ^^

그런 점에서 밥딜런이 노벨상 받은 것도 이해할 수 있지요.

저는 현대의 사회적 흐름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뭔가를 항상 빠르게 빠르게 하길 원하는 사회.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죠 그래서 음악처럼 그냥 가만히 있어도 빠르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흥하고 있는게 아닐지 생각해봅니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느끼는 시 다시 한번 흥했으면 좋겠습니다. 음악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데 말이죠

가끔은 시인이 시를 모르는 것 같기도 해요.
물론 잘 쓰는 시인들도 많고 저도 존경합니다.

공감합니다. 요즘에는 오히려 잘 다듬어진 랩이 더 시 같더라구요.

그런 점에서 밥딜런이 노벨상 받은 것도 이해할 수 있지요.
랩도 그러하고요.

감히 댓글을 답니다. 분명 모든 시는 아니겠지요. 다만 '사고와 직관 능력에서 산문적 치열함의 결핍을 숨기기 위해'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 할 시들이 많다는 생각에는 공감합니다.

그래서 전 '시'를 잘 읽지 못 합니다. 그래서 아직은 그런 치열함이 읽혀지는 산문에 더 끌립니다.

시를 시로 좋아할 수 있는 경우가 있고, 산문을 산문으로서 좋아할 경우가 있고, 그런 것 같습니다.

현대시 뿐만 아니라 현대음악(서양의클래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온갖 불협화음에 기존의 틀을 깨는 제멋대로인 형식들... 현대의 예술들을 어떻게 정의내려야 할 지...

음악도 참 어렵습니다.
제가 '막귀'이긴 하지만 그래도 현대음악은 들을 만해요.
실험시는 도무지 너무 작위적이기만 해서 ㅠㅠ

미완의 산문이라...
전 armdown이 팔-내림의 조합으로 어떤 심오한 뜻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ㅎㅎ;;

심오함 같은 거 없습니다^^

의견에 동의하고 공감합니다. 시가 지금의 형식에 집중하게 된 역사적 배경이야 따로 짚어야겠지만 무엇보다 생각(이론)의 치열함을 우선으로 보는 경향이 형성된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건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 아닌가도 싶구요. 시의 본래적 힘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고 선생님 말씀대로 사고와 직관을 포함한 본래적 가치가 좀더 쉽게 재발견되고, 공유되고 소통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그와 관련한 선생님의 의견을 부탁드려도 될른지요? 저는 산문 형식을 독자적으로 형성하기 이전의 그 무엇, 그걸 아무도 깊이 있게 되돌아보지 않는 시대가 아닌가 합니다, 그걸 개론서 강의 초 서론 읽듯 쉽게 알고 충분히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물론 몇몇 시인들이 그런 성취를 보여주는 경우도 있지만요. 글을 읽다가 뭔가에 이끌려 남겨봅니다...

의견과 질문 고맙습니다.

근데 질문이 답하기에 너무 어려워요. 산문과 구별되는 시의 본질이 무엇일까? 좋은 화두로 삼아 더 생각해 보고 기회 되면 답변을 시도해 보겠습니다.

답신 감사합니다 ^^ 어렵고 정확한 답이 없기도 하겠지만 그렇다고 본질적인 질문을 내려놓고 형식만 좇는 전문분야들이 답답했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네요 ^^ 어떤 분야든 본래 의미나 가치를 먼저 생각하는 습관을 이제 각자가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