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일기 소환 - 선생님은 무섭다(힘들게 강아지 귀 닦아주는 일기)

in #kr7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amukae88 입니다.

이 글은 11년 전 싸이월드에 썼던 일기입니다.
오랜만에 로그인했다가 그 때가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어딜가든 선생님은 무섭다
초등학교 선생님도
중학교, 고등학교 선생님도
대학교 교수님도
병원의 의사선생님도
운전학원의 선생님도 하지만 난 몰랐다
동물병원 수의사 선생님도 무서운 줄은

근 3주간 호야의 귓병 때문에 거의 매일 병원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선생님은 집에서 닦아주는 것도 중요하다며'병원에 오지 않아도 하루에 한 번씩은 잘 닦아주세요' 라고 하셨다

'선생님, 그러나 저는 귀청소 하는 법을 모릅니다' 라고 했더니'아, 그러면 배워가셔야지요' 그렇게 나는 난생처음 강아지 귀청소 하는 법을 배웠다

'이렇게 세정제를 넣고 귀지를 불리신 다음 솜으로 닦아주시면 됩니다, 간단하지요? 오늘 저녁에도 딱지가 많이 올라올테니 가르쳐드린데로 한번 닦아주세요'

  1. 세정제를 넣는다
  2. 귀를 잡고 펌핑해준다.
  3. 솜을 넣고 닦아준다

매우 간단했다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닌 거 같았다

나는 그날 동물병원 옆 약국에서 탈지면 하나를 샀다
세정제는 집에 있었기에 ...
그리고 저녁에 온 정성을 다해 호야의 귀를 닦아주었다

실수하지 않기위해 네이버 지식인까지 참고하면서 닦아주었다
아가의 귀에서 초콜렛색 귀지가 솜에 묻어나오길래난 그 정도면 될줄 알았다

뿌듯했다
내가 4개월된 강아지의 귀를 청소하다니!
어머니, 저는 진정 이 아이의 누나가 되었습니다!

다음 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동물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의 카메라가 호야의 귓 속으로 들어갔다
두근반 세근반
나의 기대와는 달리 호야의 귓 속에는 초콜렛 덩어리들이 가득했다

그 후로 며칠에 한 번씩 병원에 갈 때마다
즉, 집에서 귀를 잘 닦아줘야할 때마다
나는 꾸지람아닌 꾸지람을 들어야했다

'집에서 잘 안 닦아주시나보죠?'
'병원에 오기 전에 닦으셨다구요? 정말이십니까?'

(남자선생님 말투)'집에서 안 닦아주셨죠?'
(여자선생님 말투) '... 정말 집에서 닦아주십니까?'

난 정말 잘 닦아줬는데... 정말 솜에 초콜렛색 귀지가 잔뜩 묻어나왔는데...
나 정말 거짓말하는 거 아닌데 억울했다
무관심한 주인으로 비춰지는 거 같아서 정말 억울했다
내가 귀청소해주는걸 비디오로 찍어서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닦는 방법에 문제가 있는가 싶어 병원에서 쓰는 겸자 가위를 구입하여 닦았다

결과는 참패였다

아이의 귀는 여전히 귀지의 천국이었다

그렇게 혼나기를 수차례 결국 난 '저는 정말 제 나름대로 잘 닦는데요 왜 그럴까요 저 정말 열심히 닦아주거든요' 라고 말하고 말았다

선생님께서는'다시 한번 가르쳐드릴테니까 이번엔 잘 배워서 해주세요, 그렇게 닦은 후 3일후에 뵙겠습니다'

그렇게 다시 배운 방법으로 3일동안 난 정말 독하게 귀를 닦았다.

호야가 징징대는 말든 엄살피우지 말라며 겁을 주고 솜을 살살 밀어넣었다.

검사 1일 전'호야 내일 11시 30분에 뵙겠습니다' 동물병원의 예약 안내문자는

[정말 잘 닦아오셔야 합니다정말 잘 닦아오셔야 합니다정말 잘 닦아오셔야 합니다정말 잘 닦아오셔야 합니다정말 잘 닦아오셔야 합니다정말 잘 닦아오셔야 합니다정말 잘 닦아오셔야 합니다정말 잘 닦아오셔야 합니다정말 잘 닦아오셔야 합니다정말 잘 닦아오셔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검사 30분 전 오늘 오전 11시 난 비장한 마음로 아이를 들고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두근거렸다...
30분의 기다림 끝에 호야의 귓 속에 카메라가 들어갔다

오 하느님!
정녕 저것이 호야의 귓 속이란 말입니까
파리가 미끄럼틀타면 털에만 살짝 걸릴 것 같은 저 화면 속 귀가 바로 호야의 것이란 말입니까

호야의 귀는 정말 깨끗했다

'정말 좋아졌네요'(남자 선생님)
'장족의 발전이에요, 정말 잘 닦아주셨나보다'(여자 선생님)

뿌듯함 500
안도감 500의 2승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울린 간호사 언니의 한 마디...
이 말 듣고 난 울뻔 했다.

** '숙제 검사 받는 기분이겠어요 전에는 원장선생님께 혼나시더니 다행이에요' **

난 정말 말하고 싶었다
언니만이 내 맘을 알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그 언니 수의사 선생님들한테 엄청 혼나고 있는게 아닐까..
그래서 나의 맘을 그렇게 잘 알아준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호야의 귀가 좋아진 덕에
숙제 검사를 잘 받은 덕에
일주일 있다가 와도 좋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있으셨다

아 기쁘다

이제 난 더이상 귀청소의 노예가 되지 않아도 된다
흥분해서 글이 너무 길어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기를 읽다보니 그때의 떨림이 생각나네요
무서운 수의사 선생님 덕에 강아지 귀 하나는 기똥차게 닦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0년 넘게 귀를 닦아주고 있습니다.
크윽.
강아지 귓병 한번 생기면 정말 안 떨어집니다 ㅠㅠ

P20110210_1000001033.jpg

그 시절 강아지 모습 ㅎㅎ


고양이와 강아지 시리즈

잠 자는 고양이
https://steemit.com/kr/@amukae88/5z8sum
이번 주의 고양이
https://steemit.com/kr/@amukae88/3cusu8
후두부가 뚱뚱한 고양이
https://steemit.com/kr/@amukae88/xxnjo
편의점 앞 고양이
https://steemit.com/kr/@amukae88/4mbp1e
뒷산 오르는 고양이
https://steemit.com/kr/@amukae88/6nnoib
멍멍이, 냐옹이 덕후를 위한 초상화 만들기 사이트
https://steemit.com/kr/@amukae88/2fcq1k
이불 덮고 있는 강아지
https://steemit.com/kr/@amukae88/---2018-01-27-08-4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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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선생님께 혼나시는 장면은, 읽던 제가 괜히 억울해지더군요 :'(
11년전의 성공담. 몰입해서 읽었어요 :D

몰입해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다시 보는데......... 다시 억울해지더라고요
역시 일기는 자세히 써야? ㅎㅎㅎ

나이를 먹고나서 가장 후회되는 일은
어릴때 일기를 자주쓰지 않았다 인 것 같아요 ㅠㅠ

스퀘어님 반갑습니다
스팀잇이 좋은 일기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ㅎㅎ
이제부터라도 간단히 기록하심이 ㅎㅎ

맞아요!!

좋은 생각 같아요!!!!!!

머든 제대로 알고 해 줘야 하나 봅니다 진짜 억울하지요 열심히 잘했는데 저런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면 ㅠㅠ

맞아요 뭐든 한 번 배울 때 확실히!
그렇지 않으면 할 때마다 실수하고 노력한 만큼 성과도 없고요 ^^;

ㅎㅎㅎ 10년이
지났지만 강아지 생각하는 마음은 변함 없는게 느껴지네요 :)

ㅎㅎ 이제는 거의 서로 공기같은 존재입니다
집에 오랜만에 가면 '왔냐?' 이런 눈빛을 보냅니다 ㅋㅋ

5월 다시 파이팅해요!
호출에 감사드립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억울함이 전파타고 여까지 전해져요. 10년동안 사랑으로 강아지를 보듬어오셨군요:)

당시에는 정말... ㅋㅋㅋ 억울했었습니다.
네 이제는 동생이 정말 잘 돌봐주고 있어서 저는 손을 살짝 뗐네요

첫 성공담에 관한 일기군요.ㅎㅎ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지만 축하 드립니다. ㅎㅎ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키웠던 것 같아요 ㅎㅎ
언벤님의 따뜻한 축하 댓글 잘 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기쁘네요 ㅋㅋ

헠ㅋㅋㅋ 조명빨 때문인지 무서워보이네용 ㅋㅋㅋ 귀청소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모르겠다만 상황상 다용도실 대청소라고 생각하면 되나용? ㅎㅎ

음......... 그 다용도실이 구석구석 건드리면 아프다고 소리를 낸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ㅋㅋ
사실 방법은 간단한데 강아지가 아파하는 걸 무시하는게 힘들었어요 ㅋㅋ

야간에 찍은 사진이라 좀 ㅋㅋ 무서워보이나보네요 ㅎㅎ

ㅎㅎㅎ초콜렛이라고 하셔서 진짜 초콜렛이 들어있다는줄알았어요! 귀청소 달인이 되셨겠네요 이제!
리스팀 감사해요~.~

ㅎㅎㅎㅎㅎ 실상은 갈색 귀지인데 혐오감을 줄이기 위해 초콜렛이라고 썼습니다.
ozuboo님 그림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

한 생명을 거두기 위해선 꾸지람의 무서움도 이겨내야 하는 것이네요ㅎㅎ

맞습니다.
강아지 한 마리 키우는 데도 이러는데 육아는 어떠할지... 부모님들 대단하십니다.

11년전 글을 보시는 순간 많은 추억이 생각 나셨겠어요. ㅎㅎ
저도 옛날것을 보면 그때 당시의 많은 일들이 생각 나더라구요.

제가 이렇게 철 없었나(?) 싶기도 하고 ㅎㅎ 많은 생각이 들긴 합니다
알타이 님도 트레이딩 역사를 쓰시면서 비슷한 마음이 드실 것 같은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