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남의 불행

in #kr7 years ago (edited)


나는 기본적으로 남의 불행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의 불행을 다루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남의 불행을 다루는 것은 상당히 거대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의 불행을 다루기 위해서는 몇가지 고려해야할 사항을 생각해보곤 한다. 내 경우에는 일정부분 노이즈를 주거나 모호화하는 선에서, 내가 바라보는 시선에 딱 필요한 만큼만 차용하는 편이다.

일전에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셨던 분으로부터 이런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이번에 아프고 나서, 사용한 비용에 대해 실비 보험 처리를 했더니, 딱 그만큼 돈이 나오더라. 그런데 참 슬펐어. 왜인지 아니? 이게 내 목숨값 같이 느껴졌거든. 내 목숨을 팔아서 번 돈 같이 느껴지는 거야. 그러니 기분이 좋지 않더라구.

나는 그래서, 다른 사람의 불행을 수치로 환산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작업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아픔에 가격이 매겨지는 일이 달갑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에서, 당신은 얼마짜리 아픔이니까 이정도 입니다. 라고 낙인을 찍는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픈 일일까. 이러한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곤 하지만, 최소한 나는 그러한 의미로 변용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한번쯤 경계하곤 한다.

또한 나는 사실 나의 불행에 대해서도 얼마나 주체적으로 잘 다룰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왜냐하면 나의 불행을 어딘가 늘어놓는다는 것은, 나 스스로 마음이 편해지고자 하는 의미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의 공감이나 위로를 바라기도 하기때문일텐데, 사람마다 삶의 경험의 깊이와 방향이 다른 것이어서, 결국 각자는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경험을 이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방향의 공감과 위로를 마주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면서도, 마주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하고 결국 마주하지 못한다면 또 어떻게 해야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나는 나의 불행을 내가 결정할 수 있을 정도 - 주체적인 불행의 내어놓음 - 만큼만 나누고 싶을 때도 있는데, 내 손을 벗어나게 되면 어찌 될까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불행에 있어서도, 가급적이면 안전지대를 놓고 그 안에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내 손을 떠난 나의 이야기는 어떻게 비추어질지, 방향성은 짐작하면서도 실제로 구체의 영역에 들어선 순간, 내 의도와 다르게 마구마구 증식하거나 사그러들기도 하는 것을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각자의 불행에 대한 이야기는 각자의 손에서 주체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의 불행을 너무도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불어 남의 불행을 마치 자신의 불행인 양 포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그러려니 이해를 한다. 왜냐하면, 남의 불행의 깊이를 짐작할 수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 무게가 와닿지 않아서 그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경험이 쌓이다보면 언젠가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 조금 어렵다. 나는 이러한 것에 대해, 삶을, 삶의 불행을, 삶의 아픈 경험을, 도둑질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오롯이 껴안을 자신도 없으면서, 이해하고 공감하는 척하며 도둑질하는 것은 나쁜 것이다. 도둑질이 나쁜 것임을 누구든 모르지는 않을터, 나는 이러한 상황을 목도하게 되면, 언제나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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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에 대한 제 태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글이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종종 불행에 관해 제 태도를 점검하곤 합니다. 저도 스스로 경계하자는 의미에서 작성한 글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특히나 많은 공감을 하게 되네요. 공감능력이 하나의 스펙이기도 한 시대이기에 종종 사람들은 거짓 위로와 공감을 하기도 합니다. 진심과 꾸며낸 공감의 간격은 얼마나 될까요..

공감이 '능력'으로 평가받는 시대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생각보다 잘 와닿지 않는 위로와 공감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선의를 곡해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가급적 긍정적이고 좋은 방향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우선 믿어볼 뿐입니다. 사실 할 수 있는게 그것 밖에 없기도 하지요.

저는 단지 방식이 서툴다고 믿을 뿐입니다. 확실히 그 간극이 나타나전까지는요.

많은 생각을 하게되는글이네요..... @홍보해

닿아서 다행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께도 닿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별이@qrwerq님 안녕하세요. 입니다. @songa0906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 도둑질은 결국 자신을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으로 패키징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서 그 속내가 들여다보이면 오만 정이 떨어져서 거리를 두게 되더라고요. 얕은 공감이 가장 폭력적인 무기로 작용하는 사례를 종종 보는데.. 참 마음이 참담합니다.

저도 이 관점에 매우 동의합니다. 얕은 공감까지는 그나마 괜찮을지도 모르는데, 거기에서 더 깊이 나아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공감은 정말로 마음이 아픕니다. 어쩌면 공감 자체보다 공감의 태도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이기적인 사람들은 남의 불행도 자신을 포장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남의 불행에 공감하는 듯 하면서 속으로 자신의 행복을 확인한다고 착각하며 안도하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은 몇 번 접하면 자연스럽게 멀리하거나 적당히 선을 긋게 되는 것 같아요

저 스스로도 사실 그러한 태도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사람이니까요.하지만 언제나 조심하고 있습니다. 남의 불행에 가치를 매기지 말 것, 이용하지 말 것, 그대로 받아들일 것. 이런 생각들을 항상 하면서, 살려고 노력합니다.

자신을 포장하는 도구로서의 공감하는 척하기는 결국 누구든 알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느낌과 직관을 가지고 있고, 생각보다 쉽게 알아차리곤 하니까요.

생각을 많이하게 하는 좋은글이였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제가 글을 적은 목적에 따라 잘 닿은 것 같아 다행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언가 심오함이 느껴지고 조심스러움이 느껴져서 댓글을 달기가 주저됩니다. 혹시 무언가 더 쓰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셨던걸까요?

좋은 저녁 보내세요.

제가 너무 글을 무섭게(?) 적었던 걸까요. 삶의 불행과 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다룰 때에는, 저도 스스로 조심하는 편입니다. 일종의 푸념에 가깝습니다. 사실 더 쓰고 싶은 말들도 있기는 한데, 아마 저 스스로에게 비추어보았을 때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우선은 말을 아끼는 중입니다.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들러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러다가 본인에게 큰 불행이 닥치면 어쩌려고 ㅜㅜ
착하게 살아야 겠어요~

그래도 각자 불행이 오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불행이 오더라도 작은 불행만 오기를 바라봅니다. 착하게 사는게, 처음에는 손해보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나중에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댓글 감사합니다.

다양한 생각의 끝에 합리적인 답을 찾아가길 바래요. 글을 읽고난 저부터도 다양한 생각이 드네요.

언제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다양한 생각이 드셨다니, 글이 잘 닿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qrwerq 님을 이제야 알게되었네요..!! 다른사람의 아픔을 똑같이 느껴보기전에는 그 고통이 어떤지 말할 수 없다 생각합니다. 생각이 담긴 글 감사히 읽었어요.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겪어보지 않은 아픔에 대해 말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항상 조금은 조심해야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또한 예술의 영역일지도 모릅니다.

최근의 일련의 개인적인 상황을 겪으며 생각한 것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이야기하기 즐겨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그 불행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거나, 그 불행을 빌어 나의 행복지수를 가늠하려 한다는 거였어요. 저도 내 불행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벽을 만들어놓고, 혹은 나 자신이 나중에라도 관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공유하려고 하는 편인데, 가끔은 하염없이 무너질때가 있어요. 그만큼 외롭다는 반증이 되겠지요. 내가 우울하고 힘들다고 느끼는 때는, 항상 그 기저에 외로움이 있었던것 같아요. 아이를 둘이나 키우고 남편까지 있는 여자가 뭐가 그리 와롭냐 묻는 사람에겐 대답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서 저는 요즘 가족에게 더 가까이 가려고 노력 중이에요. 외롭다는 말로는 뭔가 부족한데... 그런 마음의 무거움은 무거운 상태로 나가야 된다고 봐요.

두 가지의 방향 - 그 불행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거나, 그 불행을 빌어 나의 행복지수를 가늠하려 한다 - 이 정곡을 찌르는 것 같습니다. 수단으로서의 불행은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결국 안좋은 결과를 낳는 것 같습니다.

저는 외로움과 고독을 분리해서 보는 편입니다. 외로움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소통으로 채워질 수있지만, 고독은 좀 더 근원적인 외로움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사람이라면, 나와 타인 간에 절대로 닿을 수 없고 이해받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저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요즘에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간으로 태어났고 자라왔기 때문에 겪는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침잠하다가 바닥을 치고, 바닥을 치다가 밀어내고 올라오기도 하는 법일 것입니다.

내 불행은 정말 힘들고, 주위 사람의 불행은 힘든 것에 공감하지만, 서로 간에 알지 못하는 타인의 불행에 대해서는 그만큼 와 닿지 않는 것 같습니다.
1:1 관계에서의 저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저도 알게 모르게 연예인의 가십 거리는 친구들과 이야기 하곤 했으니까요.
어쩌면 모두의 불행을 공감해 버리면 마음이 너무 힘들어지니 방어 기제가 작용하는게 아닐 까 싶기는 합니다.

하지만 역시 남의 불행을 너무도 쉽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싫습니다. 저 또한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 하구요. 남의 불행을 자신의 불행인 양 포장하는 사람.. 관심을 받지 못해 주목 받고 싶어 하는 그 행동들.. 어쩌면 그들은 그들이 불행한 사실을 모른 채, 남의 불행을 자신의 불행인 양 포장하는 듯 합니다.

'방어기제'라는단어를 보자마자, 좋은 통찰을 주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그렇기는 합니다. 모든 불행에 100%의 공감을 모두다 하고 나면, 아마 공감을 하는 사람은 정말로 마음이 힘들어질 것입니다. 임상/상담심리를 하시는 분들도 그렇고 정신과 의사들도 그렇습니다. 너무 많은 공감은 주의를 요하곤 합니다. 때때로 수퍼비전을 받기도 하지요.

항상 되돌아보는 마음과 태도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람이기에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마음을 놓아버릴 때도 있겠지요. 하지만 언제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끔은 남의 불행을 너무 가볍게 이야기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는 물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사람이 각자 받아들일 수 있는 불행과 고통의 깊이도 다를테고, 그에 대응하는 것 또한 그러겠죠... 다른 사람의 불행을 정말 이해하고 있었는지 저를 되돌아보게 되네요

개인적인 생각으로, 100% 이해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가끔 나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도 100%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에, 남의 불행을 100% 이해하라는 주문은 어쩌면 가혹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과하게 괘념치는 않으셔도 됩니다. 조금 더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

제 불행을 감당하기에도 벅찬 저여서 남의 불행까지 신경쓰는 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겠어요. 하지만 저는 남의 불행을 전달하거나 입에 담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안 좋아합니다. 전달과정에서 팩트만 전달되는게 아니라, 전달자의 상대적 우월감 (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악한 표현이지만.. 딱히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네요) 이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예요. 마치 '이 사람 너무 불쌍하고 안타깝다. 그에 비해 난 그러한 불행을 안 겪으니 감사하면서 오늘 하루도 잘 마무리해야지.' 라는 마음이 느껴져요. 물론,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저 또한 누군가의 불행을 보면서 저 스스로를 안위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겠지요... 또한 요새 세상이 험해져서 누군가의 불행을 자신의 수익극대화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더라구요. 불우이웃 돕기 단체의 직원들이 성금을 빼돌리는 등의 행동이 그 한 예이겠지요. 때문에 여러 가지 의미로 남의 불행은 함부로 건드려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상대적으로 좋은 상황에 대한 '안심' 정도의 단어로 조금 더 순화해보곤 합니다. 물론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비교를 하는 것에 굉장히 모두들 익숙해져있기 때문에, 불행을 받아들이는 방식, 불행을 접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비교를 통해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짐작해보기도 합니다.

남의 불행에 대해, 무언가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 그가 가지고 있는 불행에 대한 주체적인 결정권을 존중하는 상태에서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투명해야할 거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주신대로 종종 안타까운 사연을 접합니다. 불행이 다시 불행을 낳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저도 누군가의 불행을 지켜보는 입장이 아니라 스스로의 불행을 타인에게 털어놓는 경험을 되뇌어보았는데,
사실 , 그 털어놓는 잠깐의 순간이 좋은 것이지, 결국 내 불행은 온전히 나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타인이 공감한다 한들 알아봐야 얼마나 내 고통을 알겠어 라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에는 안 좋은 일이 생겨도 누구에게 내 불행에 대한 공감을 사고자하지 않습니다. 안좋은 일을 털어놓는다 한들 그저 스스로 생각한 불행을 더는 방법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 같네요.ㅋㅋ

다른 분들의 댓글도 읽어보니 굉장히 흥미롭네요.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불행을 일정부분 나누기도 하고 공감이나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불행의 일정 부분은 결국 자신만이 껴안아야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거의 유사한 경험을 하지 않은 공감은 유추에 가까울지도 모르지요. 나누고 털어놓고 지지받는 상호작용에 대한 힘을 믿습니다. 하지만 그 상호작용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저도 이 글이 달린 댓글들을 보며 많이 배우고 또 많이 이해하려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역시 댓글이 살린 것 같아요.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이어서 리스팀해가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타인의 불행보다 타인의 행복에 공감하기를..

닿아서 다행입니다. '타인의 행복'이라는 좋은 시선 주셨습니다. 그리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아, 왜 이 글을 이제야 읽은거죠. 조심조심 읽었습니다. 내 손을 떠난 나의 이야기, 그것도 불행의 이야기라니.. 끔찍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무엇이 불행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남의 불행도, 나의 불행도요. 그러니 어떤 말도, 글도 꺼내놓지 못할 때가 있는가 하면, 저도 모르게 저의 불행을 말하고 다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듣는 이에게는 불행한 이야기일 지 모르니까요.

남의 경험(불행)을 도둑질하는 것은 매우 나쁜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어디까지가 나의 불행이고 남의 불행인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이를테면 가족 구성원의 불행은 나의 불행이 될 수 있는건가요. 물론 이런 경우를 말씀하신 게 아니란 것을 알지만요.

오롯이 껴안을 자신도 없으면서,

공감하고, 공감합니다.

사실 나의 불행과 남의 불행이 촘촘히 얽혀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서의 남은, 나와 생판 모르는 사람의 남이 아니라, 내 주위 혹은 건너 닿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불행을 말하는 것은, 어쩌면 불행의 수준과 깊이를 가늠하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공감의 측면을 벗어나서요. 측정되어지는 불행은, 불행의 경계 안에서 가두어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방금 앞 문장에서 '불행의 경계'라는 단어가 떠올랐는데, 어떠한 불행들은 사람을 매개로 전파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래서 '가족 구성원의 불행은 나의 불행' 이라는 시선 대신에, '불행이 나와 가족 구성원에 닿았다'는 표현이 더 낫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내가 불행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불행이 나에게 닿은 것이지요.

불행의 경계를 감싸안을만큼, 개인적인 바람으로 저 스스로는 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모두들 그러한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마음을 가다듬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