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란 비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에게 씌워진 하나의 굴레다. 태생적인 차이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 평범한 사람들을 절망에 빠트리지 않도록, 비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그 재능을 위해 무언가를, 주로 평범한 삶을 희생한 것으로 묘사되곤 한다. 태생적인 재능을 갖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평범한 개인적 삶에 있어서도 모자람 없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 하는 대중들에게 그들은 모든 면에서 평범하지 않은 존재여야 한다.
대중들에게 천재의 모습을 전하는 이들도 대중들의 욕구를 알고 있다. 그래서 천재들을 비범한 재능을 가진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동정이 필요한 비참한 존재로 묘사하곤 한다. 최대한 틈을 파고 들어서 그들의 행복을 깎아내린다. 결코 천재는 행복하지 않아야 한다.
이 사회문화적 흐름은 독특한 현상을 끌어냈다. 평범한 개인적 삶에서도 모자람 없이 행복을 성취한 천재들의 행복을 깎아내리고 싶어도 도저히 깎아내지 못 하면, 그 천재의 능력 자체를 깎아내린다. 평범하게 행복한 사람은 결코 천재가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것도 불가능한 인물도 있다. 도저히 깎아낼 수 없는 압도적인 천재성을 갖고 평범한 삶에서의 행복까지도 쟁취한 천재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필사적으로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해 또 다시 흥미로운 설명이 곁들여졌다. 평범해 보이는 행복이라 할지라도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인정 받은 사람이 누리는 행복은 진정 평범한 행복은 아니며, 만에 하나 평범한 행복을 가지고 있었더라도 진작에 희생해야 했다는 가설이다.
천재는 불우해야 한다는 강박은 불우한 천재라는 특질을 잘 팔리는 상품으로 만들었다. 미디어는 그저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성격이 괴팍하고 그 괴팍한 성격으로 인해 삶이 불우하다면 천재로 둔갑시켜서 대중들 앞에 내보이곤 한다.
대중들의 편집증은 대중들을 행복하게 해주기도 한다.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던 천재의 삶이 미디어에 노출되고 나면 대중들은 근거 없는 말들을 퍼트리고, 그 말들이 일종의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어 개인의 삶을 무너뜨린다. 그렇게 삶을 무너뜨린 후에는 진정으로 행복했던 천재의 나날들은 모조리 꾸며낸 것이라며, 천재는 원래부터 행복하지 않았고 거짓이 드러난 것 뿐이라며 사필귀정을 들이민다.
천재들에게 닥쳐오는 이 비극은 미디어에 노출되는 천재들에게만 해당되지는 않는다.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작고 소박한 범위에만 자신의 재능을 내비친 천재들에게도 마찬가지의 비극이 찾아온다. 남에게 뻐기지 않고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천재들도, 천재성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공공의 적이 되어버리곤 한다. 질투를 담아 퍼트리는 소문들은 힘이 세다. 그렇게 소박한 꿈은 무너진다.
A씨는 천재성을 가졌지만, 어려서부터 한가지에 진득하니 집중하지 못 하고 금새 흥미를 잃었다. 그 덕분에 어려서부터 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서 눈에 띄는 일 없이 천재성을 숨길 수 있었고, 나이가 들고는 세상을 알아가면서 스스로가 더욱 철저히 천재성을 숨겼다.
아무리 숨겨도 A씨의 주변 사람들은 A씨의 천재성을 알아보았다. 지식과 경험이 전혀 없던 분야에도 흥미를 가지면 금새 기존에 그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던 평범한 사람 수준의 성취를 해내기 때문이다. 성취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할 수도 있었겠지만, 일단 흥미를 가진 것에 전념함 또한 A씨의 천성이기에 거스를 수 없었다. A씨의 천재성이 노출되었지만 A씨의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A씨를 헐뜯지 않았다. 비록 천재성을 가지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기존에 알던 사람들은 괜찮았지만, A씨는 시간이 지나며 점점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게 힘들어졌다. 평범한 수준에서 관둔 다양한 잡기들이 모이고 나니 도저히 평범하게 보이지 않았다. 평범한 수준으로 피아노를 치고, 평범한 수준으로 기타를 치고, 평범한 수준으로 바이올린을 켜고, 평범한 수준으로 트럼펫을 불고, 평범한 수준으로 노래를 부르고, 평범한 수준으로 작곡을 하는 A씨의 음악적 재능이 어떻게 평범하다 할 수 있겠는가. 음악적 재능 뿐인가? 더 나아가 평범한 수준으로 그림을 그리고, 평범한 수준으로 운동을 하고, 평범한 수준으로 각 분야에 학문적 지식이 있는 A씨를 평범한 사람으로 여길 사람이 어딨겠는가.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은 A씨의 노력을 모르고, A씨의 노력을 모르는 이들에게 A씨는 질투의 대상일 뿐이다.
질투하는 사람들이 힘들게 하기도 했지만 자신을 오래토록 지켜본 좋은 사람들이 있어 평범한 행복을 잃지 않던 A씨는 진정 평범한 삶을 위해 평범한 직업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평범한 직업이라는게 A씨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이었는데 회사들은 평범한 수준의 성취를 할 사람을 원하지 않았으며, A씨가 평범하진 않은 수준의 성취를 위해 일에 전념하면 어느새 평범함을 훌쩍 뛰어넘어 천재성이 드러나고 말았다. 눈에 띄는걸 원치 않는 A씨는 계속해서 직종, 업종을 바꿀 수 밖에 없었고 다양한 직종, 업종을 오가며 화려해진 A씨의 이력은 더 이상 평범하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일을 그만두는 A씨를 받아주는 곳은 더 이상 남지 않았고 A씨도 성취가 눈에 띄는 직종을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A씨는 막노동을 시작했다.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날들이 흐르고 흘러, 어느새 A씨의 꿈은 이루어졌다. 등과 허리에 파스를 붙이고 TV를 보며 소주를 마시는 A씨의 모습은 지극히 평범한 도시 노동자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잊었다는 것까지도 너무나도 평범한 모습이었다.
실화가 아니라면 극단적이고 큰 의미가 없는 사고 실험인 것 같습니다. 평범한 수준이 여러개인데 사람들이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거나, 천재들이 모인 게 당연한 엘리트 집단에 있어서 서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거나,(또는 그들만큼 천재가 아니라서 절망하거나) 직장에서 평범하지 않은 성취를 하고 그 계기로 마음을 바꾸고 그냥 올라가 버린다거나, 아무래도 막노동꾼은 너무 힘들어서 사무직에 정착하던가(제가 아는 많은 비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사무직이나 거의 바로 붙을 수 있는 공무원으로 갔습니다) 그 이후에는 일을 아무리 잘 처리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구요. 잘하지 않을 때 욕먹는 일밖에 없는 일들이니까.
이렇게 많은 변수들이 있는데, 이것이 개인의 삶을 조명한 게 아니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실례했습니다.
평범한 수준들이 모여서 사람들이 대단하게 생각하기에 새로운 사람들을 사귈 수 없다고 써두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몇 없는 사람들은 A씨가 많은 재주를 가지지 않았을 때부터 지켜본 사람들이기에 물론 재능이 없었다면 그만큼의 재주를 가지지 못 했겠지만, A씨의 노력 또한 알고 있기에 잘 지낼 수 있습니다. A씨가 그 재능들로 눈에 보이는 성취를 이룬 것도 아니기에 더욱 열등감이 발현될 일이 적기도 했겠죠.
말씀처럼 사무직이나 공무원에서 눈에 띌 일 없이 지낼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씨는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는 병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발각'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그 병적인 집착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죠. 내면묘사가 부족해서 현실감을 느끼지 못 하신 모양입니다.
현실감이 부족하다고 그냥 지나치실 수 있었음에도 자세한 감상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극단적으로 평범함을 추구하려는 마음에는 다소 피학적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적인 요소들도 있겠지만 가상에 가까운 사례라 여겨지는데, 저는 쓸데없이 직업병이 도지네요. A씨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혹은 A씨의 유년기가 어땠을지 궁금해집니다. 천재성을 타고 났음에도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들로 인해 자기표현을 하는 것이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것은 아닐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게 되네요.
말씀을 듣고보니 기원을 세워보고 싶기도 합니다. A씨가 청소년기에 좋아하던 여학생이 미대를 지망했는데 미술에는 뜻이 없었던 A씨가 그 여학생보다 그림을 잘 그렸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이와 비슷한 일이 A씨의 생애에 걸쳐서 여러번 반복되었다면 어땠을까요.
자신의 재능이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대상에게 해를 야기하는 결과가 반복됐다면 자기가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조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네요. 뭔가 가위손이 생각나기도 하고..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A씨가 본인의 천재성이
남의 눈에 띄지 않는걸 원한다면,
컴퓨터 프로그래밍 쪽이나,
집에서 재택 근무가 가능한 직종을 찾았다면
본인의 천재성을 굳이 숨길 필요도 없고,
옆에서 보고 질투할 군중도 없지 않았을까요?
자신의 천재성을 숨기면서 그와 동시에
평범한 삶을 추구한다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직종에서,
개인의 천재성이 직무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일을 찾아서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천재적인 속기사,
천재적인 학교급식 영양사,
천재적인 9급 공무원,
천재적인 집배원,
천재적인 여행가이드..
이런 사례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상기에 나열된 직업들은 천재성이 직무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 예시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여행 후에 답변 주세요 ^^
A씨가 천재성을 감추려는건 합리적인 선택이라기보다 병적인 측면이 있으니까요.
굿윌헌팅이 생각나네요
제 주변에 있는 어떤 한 사람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 천재성을 지닌 A씨 같은 사람이 한 사람 있는데, 주변의 질투와 시샘이 무섭다는걸 제 3자인 저도 느낄 정도로 세상은 잔인하더군요. 다만, 결과가 조금 다르네요. 제 주변의 A씨는 다행히도 엄청나게 큰 도약을 해내면서 세상이 뭐라고 하건 신경쓰지 않고 내 갈길을 간다 라는 배짱이 두둑한 사람이었던지라...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에서 그 사람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조금만 있어도 천재성을 가진 A씨는 세상을 위해 많은 것을 할 수 있더라구요^^ 이런 사람의 능력을 썩히는 것은 세상에 큰 마이너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그정도면 막노동에서조차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이건 주로 개그물에 나오는 패턴이군요....
그 내용도 썼었지만 이야기가 너무 늘어져서 잘랐습니다.
슬픈 이야기로군요. 주변에 있는 사람 이야기 인가요?
어쩌면요.
독특한 시각이라 여기며읽다보니 틀린게없네요
능력과 성취는 어차피 다른데 그 능력들이 돈. 재화로 직결되다보니 생긴 슬픈 시기심일까요
평범한사람들이 자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종착역이 막노동
계속 그는 막노동으로 살아갈지 궁금합니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남들 눈에 띄지 않게 평범하게 살다 가는것'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면요.
A씨는 자신의 삶 아니면 사회가 자신을 바라보는 삶 둘 중 무엇에 무게중심을 두었을까요?
A씨가 무엇에 무게중심을 두었든 세상이 A씨가 원하는대로 자유롭게 살길 원하지 않았겠죠.
A씨가 세상과의 관계에 심적으로 메어있지 않은 삶이라면 A씨 당사자의 삶은 멋있는 삶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A씨가 아닌 세상 속의 제가 보는 시선일뿐이지만요.
천재를 천재로 인정해주는 것이 어려운 일이긴 해요.
왜냐하면 천재는 정말 너무 부럽거든요.
질투심이 인간 본성인 양, 어려서부터 남 잘되는 걸 못보는 스타일이었던 저는..
최근 잘난 사람을 보고, '부럽다.', '멋지다'라는 말을 스스럼 없이 하려고 노력합니다.
아마도 저의 이런 노력이 천재가 천재로서 평범하게(?) 살게 하겠지요?
천재는 불운하다라는 건 사람들의 바램(?)이기만 한걸까요? 예를 들어준 A씨도 정말 각고의 노력으로 도시노동자가 되었군요. 힘들게 얻은 그 생활이 그에겐 과연 평범일지 그리고 행복할지 궁금하군요.
참 씁쓸한 이야기네요
천재성을 마냥 부러워했던 1인입니다
뭔가 씁쓸?슬픈...그런 이야기네요. 우리네 사회 주변 이야기인것 같네요ㅠㅠ
천재가 아닌 저도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데.. 천재인 사람도 평범하게 살아가는게 목표군요.
어찌보면 '평범'하게 살아가는것.. 이게 제일 힘든일인것 같네요
예.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로 담아도 훌륭한 소재인데요? 역설적이면서도 사실적이고 재미있습니다!
재밌었다면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잛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천재적인 글을 읽으니 화가납니다.😤
한국에서 특히 심하죠....저도 티비에서 가끔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재능을 보이는 영재 친구들이 나오면 감탄사보다 '저걸 어째....커가면서 얼마나 힘들어질까...'란 생각부터 들더라구요. 그들이 가진 재능에 반해 인생이 불운하길 원하는 게 아니라, 그런 환경에 놓일 그들의 순수한 영혼이 안타깝더라구요.
씁쓸하네요 ㅜㅜ
천재가 불행하다는 건 아이러니합니다. 모두가 천재되고 싶어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시선입니다. 천재도 평범해지고 싶다...
전 반대로 평범한 것을 꾸준히 하면 비범해진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말씀하신 주제가 더욱 새롭게 다가옵니다.
인생은 평범하게 사는것이 제일 좋습니다.
남들쉴때 쉬고 일할때 일하고 하는것이 제일 평범한것 같습니다.
대신 엽전은 조금 생각좀 해보아야겠지요.
성공한 천재의 옆에는 보좌? 에만 특별한 재능이 있는 또다른 천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하나만 잘하기도 힘든데 모든 걸 잘한다는 건, 누군가의 도움이 있을 듯해요. 그 누군가가 사람이건, 책이건, 대화이건,
관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한없이 넓힌다면 이용당함도 그걸 만족하는 경우에는 행복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혼술, 혼밥 등이 난무하는 외로운 세상에,,,관계는 또다른 여러가지의 세상을 만들어주는 연결고리라고 생각해봅니다.
섬뜩하네요. 천재성과 광기가 항상 붙어다니는 건 당연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천재를 '시샘'하는 사람으로써 스롱로의 자세에 대한 경각심도 생기는군요ㅋㅋ
마지막문단을 읽기전까진 '맨프롬어스'의 주인공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범이라는 기준을 두고 반대쪽에서 평범을 향해 기를 쓰고 기어올라가려던 둔재나, 평범을 향해 기를 쓰고 내려가려던 천재가 결과적으로는 비슷해져버렸네요.
초점을 자신을 평가하는 사람들이나 대중에게 두지 않고, A 자신에게 두었으면 A 자신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게 많은 일을 하면서 분명 자신이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는 일도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요... 대중의 평가를 신경 쓰고 싶지 않을 만큼 사랑할 수 있는 일요...평범함을 병적으로 집착했음에 그 만큼 많은 것을 못 보고 지나갔을 지도 모를 삶에 안타까움이 떠나지를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