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포르노
나는 어느 사진 기자의 고백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사진사는 과거 아프리카의 한 지역이 가진 이국적인 전통을 카메라에 담았고 이를 세계에 소개했다. 그가 카메라에 담은 아프리카 부족민의 헐벗은 모습은 큰 인기를 끌었다. 마치 문명을 거부하는 듯한 그들의 이미지는 신비감과 연민이 뒤섞인 묘한 감정을 끌어냈다. 그리고 다큐 속의 현재에서, 사진사가 담아냈던 야만의 이미지는 더이상 부족민의 삶을 대변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더이상 헐벗지 않았고,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한번 찍힌 그 이미지는 여전히 세계인들의 마음 속에 부족민의 삶을 대표하고 있었다. 많은 다큐멘터리 제작사와 사진 기자들이 야만과 빈곤을 취재하기 위해 부족을 방문했다. 부족민들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아침이면 면티를 벗고 전통 장신구를 착용한 채 몸에 그림을 한가득 그렸다. 관광지가 된 마을에서는 흥정이 이루어졌다. 면티와 청바지를 입고 나이키 신발을 신은 부족의 남성은 사진 기자에게 사진 한 매당 얼마씩인지 가격을 제시했다. 이곳에서 제작된 사진과 영상은 다시 세계로 팔려 나갔다. 꾸며진 야만과 거짓된 빈곤은 하나의 산업이 되어 있었다. 사진 기자는 한 부족의 삶을 한정지어 버린 자신의 사진을 후회했다.
빈곤 포르노(Poverty Porn)라 일컬어지는 창작물들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연민을 먹고 자란다. 몇몇 NGO단체는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구호한다는 명분으로 그들의 가난을 판매한다. 이기심만큼이나 강한 연민의 감정은 그들의 사업을 번창시켜주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그리고 이를 본 창작자들은 모순되는 어휘들 사이에서 가난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엄밀히 말해 대중의 연민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돈을 만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연민을 끌어모을 초점으로서 가난과 빈곤의 진부한 주제를 벗어나, 신체적 장애를 지닌 사람들과 상처를 받은 사람들까지 창작물 안에 담아낸다. 그들은 빈곤 포르노라는 작는 명칭을 넘어 곤궁 포르노라는 이름이 더 걸맞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내고 있다.
객체가 된 빈곤
물론 이것이 누군가를 돕기 위한 거짓이라면, 나는 그 선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그 내용이 과장되었다 하더라도 부분적으로나마 진실을 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빈곤 포르노라는 방법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고, 그것의 감상을 꺼리는 감정이 일어남을 어찌할 수 없다. 나는 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 이전에, 깍아져 내려가는 그들의 인간성과 그들이 느낄 모멸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과연 나라면 나의 가장 비참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을까. 삶을 위해 나의 인격까지 팔아야 한다는 치욕감은 그의 가슴에 얼마나 상처를 남기고 있을까. 혹자는 내가 배부른 나라에 태어나 ‘무엇이 더 중요한지’ 모르는 샌님인 탓이라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창작자들 역시 배부른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임은 매한가지이다. 나에게는 그들의 행위가 자신은 하기 싫어하는 일을 타인에게 종용하는 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창작자들은 왜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으로서 자신의 것을 팔아 베풀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것을 팔아 분배하는가. 내 기분에서 그들의 활동은 상업적 중개인의 지위에 불과하고, 잘해야 동업자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내가 빈곤 포르노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이유는, 누군가를 불쌍하게 여긴다는 오만한 감정에서 오는 죄책감 때문이다. 이는 누군가가 마주한 어려운 형편을 외면하고자 하는 마음과는 다르다. 이러한 내 감정의 반응은 영화「아이 엠 샘」과「7번 방의 선물」을 보고 느낀 감상으로 비교하자면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다. 두 영화는 유사한 소재와 유사한 인물 관계를 다루고 있지만, 주인공을 대하고 묘사하는 태도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아이 엠 샘」에서 숀 펜이 연기한 샘 도슨은 매우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샘은 비틀즈 음악을 좋아하고 자주 만나는 이웃 친구들이 있다. 영화는 우리가 샘이라는 인물을 알아가고 공감할 수 있도록 길을 놓아 간다. 반면에 「7번 방의 선물」에서 류승룡이 연기한 이용구는 철저하게 평면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감동을 위한 부성애만이 강조되고, 그의 부족한 지능은 희화화 된다. 영화는 이용구를 최대한 불쌍하게 만들어 우리의 눈물을 쥐어 짤 준비를 해 나간다. 나는 전자의 영화에서 샘이라는 한 명의 인간이 기억에 남았지만, 후자에서는 낮잡아진 바보의 전형만이 기억에 남았다. 샘 도슨에게 느낀 나의 연민이 내 이웃에게 또는 내 친구에게 보내는 선물이었다면, 이용구에게 느낀 연민은 열등한 존재에게 내리는 하사품이었다. 전자와 달리 후자의 영화를 본 나는 나에게서 느껴지는 오만한 감정에 죄책감을 느낀다. 어떻게 감히 누가 누구를 함부로 불쌍히 여길 수 있을까. 나는 같은 이유에서 인간을 제거하고 곤궁만을 남긴 빈곤 포르노가 결코 달갑지 않다.
누군가는 내가 수요자인 일반 대중을 함께 공격하고 있는 것으로 느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불행한 처지의 사람들을 동정하는 대중을 비판하려는 마음은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나처럼 이리 재고 저리 재는 편협한 마음을 가지지 않은 착한 사람들이다. 나는 단지 이렇게 착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해 먹는 거짓된 장사치들을 비난할 뿐이며, 설사 선의의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내 뒤틀린 심성이 이를 선호하지 않음을 밝힐 뿐이다.
주체가 된 빈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한 가지 큰 딜레마를 겪는다. 나는 차마 빈곤 포르노의 주체가 되어버린 사회적 약자들을 비판하지 못한다. 곤궁에 처한 당사자가 자존심을 꺾고 도움을 청하는 마당에, 어떻게 “당신은 스스로를 그렇게 다뤄서는 안돼”라는 오지랖을 부리거나 “당신 그정도로 힘든 것은 아니잖아”라며 상대의 절박함을 깎아 내리는 오만을 부릴 수 있을까. 다소 과장과 거짓이 섞여 있다 한들 이는 그들이 겪는 고통에 비하자면 사소한 문제에 불과할 따름이다. 게다가 그들은 이를 통해 그저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창작물이 못내 불편하면서도 결코 그들을 비판할 수가 없다.
물론 모든 것이 거짓인 사기꾼도 있을 터이다. 작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살인마 이영학은 오랫동안 어금니 아빠라는 빈곤 포르노의 주체가 되어 후원금을 모았다. 사람들은 그의 끔찍하고 추악한 진실이 드러나서야 속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영학 같은 악질의 범죄자를 다른 주체들과 함께 엮어서 생각하고 싶지 않다. 타인의 선의를 비웃듯이 쉽게 이용하고, 감히 약자의 틀을 내세워 방패막이 할 수 있는 악마적 인격의 소유자는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극단적인 사례로 나머지 사람들을 통째로 묶어 매도할 수는 없다.
결국 나는 빈곤 포르노의 창작자에게 들이밀던 비판의 칼날이 겨눌 곳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빈곤 포르노라는 창작물을 여전히 싫어함에도, 창작자를 비판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는 나에게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오만함에 느낄 죄책감이냐’ 혹은 ‘절박한 사람을 헐뜯어 느낄 죄책감이냐’를 선택하게 만드는 감정적 함정과도 같다. 마땅히 이 진퇴양난의 상황은 순수하게 타인을 안타까워할 수 없는 나의 비뚤어진 마음 탓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덫에 빠진 것이 억울하여 스스로를 달랠 핑계로서, 이 사회에 책임을 일부 돌려본다. 멍청하게 덫에 걸어들간 것은 나이지마는 그 덫을 놓은 것은 사회가 아닌가하고 말이다. 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동사무소로 발걸음을 향하지 않고, 자신을 광고하게 되었는가하고 말이다. 사회가 그들을 바르게 지원했더라면 빈곤 포르노의 명분은 어디에도 없었을 터였다. 이 사회는 빈곤 포르노의 제작 환경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반성해야 한다. 나는 마침내 후자의 죄책감을 털어 내고, 내 못된 심보가 빈곤 포르노의 제작자를 마음 놓고 비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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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과학 그냥 에세이 블록체인
많이 공감해요. 저도 후원금 모집을 위한 방송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당사자들의 절박한 삶의 단편이 불특정 다수에겐 그저 잠깐의 값싼 동정과 연민으로 소비되는게 너무 불편한데, 한편으론 그래서 내가 그 값싼 연민과 동정을 소비하는 것 말고 어떤 방식으로 그들에게(그리고 방송에 나오지 않는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수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나를 생각하면.. 결국은 ARS라는 아주 편리한 방식으로 어쨌든 그들에게 몇천원(중 일부겠지만요)이라도 보태주는 것이, 불편하다며 이런 저런 잣대를 들이미는 것보단 차라리 조금이나마 더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홍보해
맞습니다. 저도 이래저래 어휘를 동원해 썼지만, 불편한 감정끼리 부딪히는 딜레마 사이에서 결국은 돕는것이 최선아닌가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전히 내면을 깊게 깊게 내려가도록 이끌어 주시네요. 그 깊은 곳에서 아직은 모르는 무언가를 만나고 싶습니다.
꼭 만나게 되실 것입니다!
"사회의 책임"이라는 말에 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말씀하신 주제와는 조금 동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반사회적 인간을 어떻게 사회적 인간으로
변화시킬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실제 많은 거지들과 노숙자들이 사회에 소속되지 못하는 것과
많은 궁핍한 나라들이 세계에 소속되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조금은 닮아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나라 내에서는 그래도 조금씩은 진보할 수 있는데
국가 단위에서는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요...
너무 어려운 주제를 던져 주셨네요...
사실 이 글 자체도 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지난 주부터 생각한 소재였는데, 혹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심지어 친한 동생을 붙잡고 이 주제로 토론도 한번 해보았습니다. 혹시 제 생각이 어딘가 심각하게 잘못되었을지도 모르니까요.
전혀 잘못된것 아닙니다.
아주 올바른 훌륭한 사고체계를 가지고 계시다고 판단됩니다.^^
왜냐하면 저와 생각이 비슷하시기 때문에 ㅋㅋ
훌륭하십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요호님이랑 sleeprince 님 쵝오 +_+
공감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빈곤 포르노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다루는 포르노의 문제점은.. 찍힌 이와 보는 이를 분리해서 완전히 다른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불쌍하다.' 라는 감정만 남게 만드는 모든 작품은, 나쁜 작품입니다.
오오 제가 찾던 문장을 @thelump 님이 써 주셨군요!! 옳습니다. 찍힌 이와 보는 이를 분리해서 완전히 다른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어 버리죠! 저는 인간 대 인간으로 공감할 수 있는 착한 작품을 좋아합니다!
sleeprince 님과 마찬가지로, 제 머릿속에만 맴돌던 그 문장을 오쟁님이 말씀해주셨어요 ! 적어주신 것처럼 단일 감정만이 유일한 답인 것처럼 유도하는 작품은 나쁘네요.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유니세프라던가 세이브 더 칠드런 같은 후원광고를 접할 때마다 불쌍한 마음 한 켠에 드는 불편함... 그래서 죄책감 같기도 한 복잡한 기분이 들곤 하지요. 약자의 빈곤을 이용해 장사하는 사람들은 죄책감도 모르나 봅니다.
정말 악질적인 인간 말종입니다. 우리가 가진 최악의 어휘들을 모두 수사로 사용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제가 늘 품고있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것뿐이겠습니까? 어차피 살아간다는것은 폭력과 희생위에서 걸어가는 것이지요. 우리는 먹기위해서 다른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고 그놈의 맛을 위해서 온갖 가학적행태를 일삼지요. 그렇지만 마트 혹은 음식점에서 아무 상관 없는 듯 분위기 잡고 고상하게 먹지요. 그냥 그 과정은 모르고요. 정확히 말하면 알면서도 무시하는거죠.
결론은 마음가짐의 선택문제겠죠. 좀더 덜 탐욕적/덜폭력적으로 살아가자.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들을 사회가 조금씩 고쳐나가서, 덜 탐욕적/덜 폭력적인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빈곤을 보는 제 눈과 마음에서 이는 생각과 감정이 오만하고 죄스러울때가 많네요. 수단이 과하고 노골적인데 그 뒤에 간절함이 덮어질까 염려가 되기도 하네요.
깊은 생각이 없었어서 더 민망하기도 하네요..
민망하긴요. 오나무님의 착한 심성을 누가 탓할 수 있겠습니까.
착하긴요, 단순한거예요. ㅠ.ㅠ (이정도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도 가끔 생각하던 부분이네요.
글을 몇번 적었다 몇번 지웠네요.
자극적인 소재에 목말라 있는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기 식의 촬영과..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썩은줄임에도 잡고 싶은 그들이 자신의 불행함을 팔아 도움을 요청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서 보면..
도움 받지 못하였다는 기사를 볼때마다 씁슬해지기도 하고요..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는 덫... 잘 보고 갑니다. :-)
감사합니다.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연민이 돈으로 바꾸어지는 세상이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글이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isis-lee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이와 비슷한 자료를 볼 때마다 저 역시 양가감정이 일곤 합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일전에 tv를 통해 나무에 옷을 걸어놓고 파는 아주머니에 대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제작진과 공무원이 다가가 도움을 주겠다고 했지만 아주머니는 극구 손사래를 쳤습니다. 좋은 말로 사양하다가 나중엔 화를 내시더군요. 도움 따위 필요 없다고요. 남의 선의(인지 호기심인지 모르겠지만)가 당사자에겐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빈곤 포르노에 함유된 문제점을 지적하셨는데 저도 공감합니다. 말씀대로 본인 사생활을 드러내는 일을 감수하고서라도 도움의 손길을 원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요. 매우 어려운 문제이지만, 촬영 혹은 취재의 대상자들과 터넣고 대화를 나누고 최대한 진실에 가까운 자료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회의 책임에 대해 말씀하신 것도 동의합니다.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이는 정말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광고를 통해 연민을 호소하는 여러 후원 기금 모집을 볼 때마다, 문제의 해결(사실은 원인이기도 한) 주체인 정부나 유엔이 아니라 왜 소시민의 지갑을 겨냥하는지, 불쾌감이 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감합니다. 우리가 구상한 사회 조직이 좀 더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ciceron
님이 당신의 글을 번역 요청했습니다Powered by Steemit Translation by CICERON
잘 읽었습니다
자주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본래 제가 쓰는 글이 과학 관련된 글이지만, 종종 이런 종류의 글도 쓰고 합니다. 제 글이 @sunghaw님의 취향에 잘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자주 찾아 뵙겠습니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말이 떠올라요. 소비의 대상이 된 ‘불쌍함’엔 자립의 핵심이 빠져있어요.
인간의 일시적인 감정에 호소하여 사회적 문제인 가난을 해결할 수 없어요. 주체도 방법도 뭐 하나 맞는 게 없으니까요.
동의합니다. 각 개인에게 해결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해결해 나아가야 할 문제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자립' 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모든 시도는 '빈곤 포르노' 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아요.
그런데 몇백년 후의 인간 사회의 끝판왕 버전에서는 과연 '가난' 이 해결될 수 있을까요... 우리 인간에게 그러한 능력과 "의지" 가 있을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ㅠㅠ
주말 낮 광고시간에 자주 나오더군요
진짜 왜 아프리카는 모두 가난하지? 라는
생각을 했지만 알고보니 꼭 그렇지도 않더라구요
누군가의 가난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나쁜것
같아요 공감!
감사합니다.
와.....슬립프린스(님이라고 부르는거 맞나요?)님 필력이 어마어마하십니다. 홀린듯 읽었어요. 한번도 빈곤포르노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본적이 없는데 덕분에 저도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네! 슬립프린스라고 읽어주시면 됩니다! 원래는 동화 sleeping beauty에서 따왔는데 handsome이라고 하기엔 현실적 괴리가 너무 커서 신분으로 바꿨습니다.
저는 작품의 수요자 입장에서 비판을 했습니다만, 제가 리스팀해놓은 @thelump님이 창작자 입장에서 쓴 고민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thelump님의 글도 이어서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오, 리스팀해두신 글 꼭 읽어보겠습니다 슬립프린스님 :) 아이디에 대해 설명해주신 덕분에 확 각인이 됐어요. 앞으로도 자주 뵈어요 ㅎㅎ
감사합니다 자주 찾아 뵙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딜레마입니다. @thelump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단일 감정만 강요하는 '빈곤포르노'는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에게 다른 현실적인 대안이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니까요. 우리 사회와 시스템은 사회적 약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다가가야 할까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은 칼로 잘린듯 명확히 구분되지 않으니까요. 다만 @thelump님처럼 치열하고 고민하는 창작자와 아무 생각없이 돈을 쫓아 포르노를 쏟아내는 창장자는 어느정도 판단이 되지 않겠습니까.
@The lump님 글을 보고 들어와 읽습니다. 단순히 지나치기 쉬운 주제를, 어려울 수 있는 어떤 지점을 본인만의 관점에서 진지하게 풀어나가시는 글이 감동적입니다. 사회적으로 더 논의가 되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홍보해
감사합니다. 제가 소비자 입장에서 작품을 보고 느끼는 감정을 썼다면, @thelump님은 생산자 입장에서 작품을 생산하며 느끼는 감정을 풀어내서 글을 접하시는 분들에게 균형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정말 고민없이 나온 창작물과 악의적인 창작물을 보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thelump님의 글을 보니 좀 죄송스러웠습니다.
이러한 소위 '빈곤 포르노'는 창작자와 소비자 모두, 명징하게 본인들이 어떠한 관계에서 빈곤포르노를 생산하고 소비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떠올리지 못한 상태로, 생산하고 소비하게 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들'은 창작되고 생산되며 소비되는 것이 너무도 뻔하기에, 사실은 '빈곤'을 넘어선 다른 여러 감정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곤"의 판매가 더 나쁜 이유는 명확합니다. 대체로 빈곤을 지닌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일 가능성이 높으며, 빈곤을 창작하여 판매하는 사람들이 받는 보상이 실제로 빈곤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않을 염려가 있으며, 소비자는 빈곤을 소비함으로써 약간의 도덕적 위안/우월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자유로울수는 없지요.
동의합니다. 제가 글을 써가며 몇 가지 문장을 쳐낸 부분이 있는데, @qrwerq님이 말씀하신 부분과 유사합니다.
현대 사회에는 모든 종류의 이미지가 소비되고 판매됩니다. 저는 이를 두고 "연예인이 이미지를 구축해서 자신을 판매하는 것과 다를게 무엇인가"라고 문장을 쓰다가, 다른 가벼운 감정들과 비교함으로써 대중의 연민과 빈곤의 이미지를 너무 가볍게 만들어 버리는 것 같기고 하고, 제 의도와 다르게 절박한 심정의 사람들을 전부 매도해 버리는 느낌을 줄까봐 삭제했습니다. 또한 저는 다소 악의적이고 고민없는 창작자들만을 비판하고 싶었습니다. 감정의 영역을 확장시켜버리면, '빈곤'과 '연민'이라는 주제는 작은 일부가 되고, 모든 창작자를 싸잡아내는 것이 아닐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제가 리스팀한 글처럼 정말 고민과 고민 끝에 나오는 창작자까지 모두 옭아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소비자가 느끼는 도덕적 위안/우월감은 제가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어떤 글을 쓰든 타인의 감정을 함부로 왈가왈부하는 데에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남을 돕겠다는 감정을 두고 '너의 감정은 위선이다'라고 어떻게 함부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단지 제가 느끼는 그 우월감에 대한 죄책감만을 표현했습니다.
@qrwerq님의 말씀에 사실 동의하는 바가 있지만 제 역량의 한계 탓에 글에서는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조금 비겁한 방식의 글쓰기일 수도 있습니다만, 만약 저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계시고, 그래서 이를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빈곤 포르노, 너무 공감되는 말입니다.
NGO에서 일하는 지인에 따르면 심지어 빈곤을 연출하기 위한 배우도 있다고 하네요..
박완서님의 '도둑맞은 가난' 소설이 생각납니다.
배우까지 동원하는군요... 정말 그게 옳은 일일는지
인터넷에서도 일어나는 일이죠. 어떤 SNS에선 누가누가 불쌍한가 대회라도 하는것처럼 경쟁적으로 올라오니 갈수록 진위를 의심하는 눈초리가 많죠.
맞습니다. 저도 인터넷에서 본 일이 있어서 영감을 받고 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빈곤 포르노에 대한 풍자로 그해 최악의 빈곤 포르노 광고에 주는 Rusty Radiator 라는 상도 존재하지요. 구호캠페인계의 라즈베리상 같다고나 할까요...
오호 그런 상도 있었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저도 이래서 가난 포르노, 동정심 포르노 매우 싫어합니다
이런 걸 보노라면 그들이 수단이 되고 '그들을 보며 위안과 동정을 돈으로 지불하는 사람'들이 주체로써 느껴집니다...
예전에 마더테레사를 비판한 책 '자비를 사다'독후감을 포스팅 한 적이 있는데요 그 포스팅에도 제가 느낀 빈곤 포르노와 그 중심에 있는테레사 수녀에 대한 불쾌감을 서술했습니다 ㅎㅎ
늘 포스팅 잘 보고 있습니다 슬리프린스님 :)
감사합니다. 확실히 무언가를 돈으로 사고파는 관계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을 때 갖는 불쾌감이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제가 가끔 받던 막연한 느낌을 글로 너무 잘 풀어놓으셔서 다시 보려고 리스팀합니다. 잠자는 슾속의 왕자님이신가요ㅋㅋ
감사합니다! 네동화 sleeping beauty에서 따왔습니다! 일전에 스팀잇네임첼린지에서 한번 설명한적이 있습니다.
빈곤 포르노라는 말을 처음 알았는데, 묵직하네요. 하고싶은 말이 쓰여져도 있고, 더 생기기도 하는 뜨거운 글이나... 뭐라고 덧붙일 능력은 없고 생각할 거리가 많아 한번 더 읽으려고 리스팀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빈곤을 팔아 주머니를 채우는 것을 매우 싫어했는데 빈곤 포르노라는 단어가 있었군요. 포르노 중에(?) 제일 달갑지 않네요.
아잇ㅋㅋㅋㅋㅋ
저도 같이 웃읍시다... ㅋㅋㅋ 뭐에 터지신 거지...!
다른 것은 혹시...
푸드 포르노? :P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늘 불편하게 생각했던 부분이라 많은 공감을 했네요.
다른 글들 더 보고 싶어 팔로우 하고 갑니다. 자주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빈곤 포르노'는 세계의 가난과 슬픔에 대한 대중의 부채감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지요. 많은 사람들이 대중의 이런 심리를 꿰뚫어보고 이용하는 면이 있지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만, 누구도 자각하지 못하고 지내는 어떤 개념을 통찰하는 이런 글 참 좋습니다^^ 역시 sleep은 지독한 역설이었네요. ㅎ
수면 명상법입니다ㅎㅎ
TV에서 불쌍한 아프리카와 멋진 성우의 목소리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는 제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거대 농업회사에서는 수급조절 명목으로 잉여 농산물을 수장하고, 한쪽에서는 굶어죽는 현실이 리얼리티를 상실한 느낌입니다.
생명은 고귀한데, 인구의 숫자 문제는 언제나 가슴을 답답하게 합니다.
정말 웃기지도 않는 아이러니입니다.
'빈곤포르노'라는 단어에서 많은 느낌을 받습니다.
공감하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이 많아지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충분히 공감가는 글입니다!!
깊은 울림 안고 갑니다~
편안한밤 되세요^^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제가 당신을 기억하는 이유가 이 포스팅때문입니다. 이웃분이 리스팀했는데 그걸 읽었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지금 쓰고 있는 필사글 다음으로 이 포스팅을 필사하고 싶습니다.
보통 손글씨라 읽기도 힘들고 해서 보팅받아도 여태 최고금액이 5달러였네요.
돈은 페이아웃되는 일주일뒤 스달의 반을 전송해드립니다. 그리고 본문 링크도 걸것입니다.
의견 기다릴게용^^
물론입니다! 평생을 똥손으로 살아서 어디에 제 손글씨를 내미는 것이 부끄러운 저로서는 영광입니다.
이힝♡ 감사해여^^
포스팅은 제가 워킹맘이라 좀 늦을수도 있구요
글적게되면 태그할게욥
감사합니다!
다음주 주말쯤 올릴께요ㅋ^^ 잊고사시면 됩니당
안녕하세요, 슬립프린스작가님!
@channelsteemit 운영하는 Feel通입니다!
스팀잇의 가치 있거나 감동 있는 글을 영상과 음성으로 만들고 있어요.
이 글을 채널스팀잇에서 제작하고 싶은데 어떠신지 생각을 여쭙습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해요! 답변 부탁드릴게요:-)
물론입니다.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채널 들어가서 기존에 만드셨던 영상 보았습니다. 목소리가.... 너무 좋으신 것 아닙니까? 제 글을 @feeltong님의 목소리로 읽어 주신다면 오히려 제가 감사할 일입니다.
와우 ^^ 재밋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NGO 광고 볼 때마다 느끼는 이중적 감정을 정말 명료하게 찝어주셨네요.. 뒤늦게 제대로 읽었지만 좋은 글 감사합니다.
"빈곤 포르노의 제작 환경으로서의 사회"라고 정확히 지적해 주셨지만 저는 빈곤 포르노가 '우리'를 '본질적으로 지울 수 없는 부채감'에서 해방시켜주는 값싼 대체품이라는 점에서 비판적입니다. 빈곤 포르노는 부채/해소가 쌍둥이처럼 붙어있는 '면죄부'를 생산하고 우리는 돈을 약간 지불함으로써 처음부터 해소되기 위해 조작되어 있던 부채를 청산한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일종의 환각제라는 느낌입니다.
또한, 몇몇 진보주의자들이 현대 국가의 복지 시스템에 대해 그것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지배계급의 이익을 지탱하기 위한 미끼 겸 임기응변'이라고 비판하듯이 유사한 논리가 빈곤 포르노에도 대입된다고 봅니다. 가령, 아프리카의 빈곤은 전적으로 서구 제1세계의 책임입니다. 제국주의 시절 맘대로 땅을 쪼개고 사람을 착취해서 지금의 부를 쌓아놓고 그 '비용'은(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전 세계에 전가하고 있습니다. 빈곤 포르노는 그 극대화된 체제의 지탱 시스템이지요. 사실 그들이 진정 책임과 부채를 통감한다면.. 전력으로 아프리카를 도와야 하겠으나 결국 여윳돈 중 여윳돈을 넣고 값싼 위안을 얻는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면에서 소시민인 '우리'가 느끼는 부채의식이란 어쩌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진정한 작업은 빈곤 포르노 비판에서 수반되는 이 '반사적' 역설감을 이겨내고 나아가 '지울 수 없는 진정한 부채의식'을 발굴해내고 그것을 마땅히 돌려줘야 할 것에게 돌려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더 쓰다간 중언부언하게 될 것 같네요. ㅋㅋ 왕자님 글이 좋아서 논지에 근거 몇 글자 덧붙이고 도망갑니다..
도망가신다고 표현하시기에는 포스팅급의 댓글을 다신 것 아닙니까ㅎㅎㅎ 말씀하신 것처럼 이자도 안되는 값싼 부채의 탕감이 아니라 진짜 원금을 찾아보아야겠습니다.
ㅋㅋ 그런 의미에서 제가 나름의 오마주 시리즈(?)를 기획 중인데.. 그 첫 번째로 왕자님의 이 글을 타겟팅해도 될까요? 막 거창한 건 아니고, 좀 오래되었지만 좋은 글 되살림과 동시에 해당 글이 다루는 주제에 대해 내용을 덧붙인다, 재논의한다? 정도의 의미로 써보려구요. 구체적으로는 왕자님이 다룬 빈곤 포르노 글의 구절들을 논문에서 인용하듯이 인용하며 저도 관련해서 글을 한편 쓴다는 의미로 ㅎㅎ 혹시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아 혹시나 이 글을 제가 어떤 맥락에서 쓰게 되었는지 동기를 아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키티펑크님이 가입하기 전 일이라 모르시고 계실수 있는데 목록에 없는 제 글 중에 빈곤 '포르노 후기' 라고 있습니다.
예,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